▲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과 교수 |
세종시 건설은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역사적 소명을 달성하기 위해 여야 합의를 거쳐 특별법을 제정하여 진행되고 있는 국책 사업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효율성'이라는 하위 가치를 위해 '형평성'이라는 상위 가치를 훼손하는 본말이 전도된 행태를 벌이고 있다.
행정이란 정부와 국민 사이에 일종의 교환행위이다. 즉 정부는 국민들에게 행정 서비스와 재화를 제공하고 국민들은 세금 납부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주어진 의무를 다한다. 이 경우에 정부는 행정의 공급자이고 국민들은 수요자가 된다. 민주적이고 선진화된 행정이란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으로 행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행정 비효율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행정의 공급자인 공무원들의 편리성만 고민할 뿐 수요자인 전체 국민들의 편익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만일 세종시에 행정도시가 들어서게 되면 국민들이 행정 서비스를 받기 위해 서울로 갈 필요가 없게 되어 시간과 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세종시에 행정도시가 건설됨으로 해서 국민들의 편익이 훨씬 커지게 된다.
현 정부가 말하는 행정 비효율이라는 것은 원안대로 추진되었을 때 세종시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서울로 출장가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또한 서울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각 부처 사이의 업무 협조와 조정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정의 공급자는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지방정부도 있다. 그 동안 지방 공무원들이 서울로 출장가는 것은 행정의 비효율이 아니었단 말인가? 세종시에 근무할 공무원들이 서울로 출장가는 것만 행정 비효율로 인식하는 것은 너무도 편협한 서울 중심의 사고이다. 세종시로 행정부처가 이전하고 적절한 권한 위임이 이루어지게 되면 지방 공무원들이 서울로 출장가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오히려 국가 전체적 차원에서는 행정 효율성이 제고될 수 있다.
행정부처가 분리되어 각 부처 간 업무 협조가 어려워진다고 하는 것도 아날로그적 사고에 불과하다. 지난 1월에 발표된 '2010년 유엔 전자정부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192개 국가 중에서 1위를 차지하여 정부의 정보화 수준이 세계 최고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처럼 정보통신 인프라를 훌륭하게 갖추고 있는 나라에서 채 반 시간도 안 되는 공간적 거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행정부처를 집적시켜야 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 구시대적이다.
행정 비효율 때문에 행정도시를 백지화하고 경제도시를 건설하겠다고 하는 것은 허구이며, 수도권을 중심으로 가진 자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기만에 불과하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이 정치적 목적이 아닌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호소가 진정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행정 효율성과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방향으로 세종시를 수정하여야 한다. 그 길은 바로 헌법을 고쳐 세종시에 행정수도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라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 할지라도 과감하게 그 길을 열어가야 한다”는 대통령의 뜻을 실천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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