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하]버클리에서 맞은 봄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완하]버클리에서 맞은 봄

[중도춘추]김완하 시인ㆍ한남대 교수

  • 승인 2010-03-04 14:19
  • 신문게재 2010-03-05 20면
  • 김완하 시인ㆍ한남대 교수김완하 시인ㆍ한남대 교수
봄의 길목에서 여기저기에 꽃들이 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리고, 짙은 초록빛 구릉들이 텔레토비동산을 만들면서 한결 설렘으로 나를 술렁거리게 한다. 한국에는 아직도 추위가 다 걷히지 않았다는 제자의 연락을 받고 보면 어느새 나도 이곳의 계절에 익숙해진 듯한 착각에 빠지고 만다. 헤더 팜 공원을 따라서 산책을 하다 보니 잔 바람은 한층 보드라운 깃털로 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간다. 문을 열어 방안의 공기를 새롭게 바꾸어 들이며 깊은 호흡을 내쉬어본다. 이곳 버클리에 와서 맞이하는 봄을 향해 내 가슴을 활짝 열어본다.

▲ 김완하 시인ㆍ한남대 교수
▲ 김완하 시인ㆍ한남대 교수
먼 능선들은 그동안 웅크리며 잠겨 있던 침묵의 어깨를 털고 일어나 푸른 등줄기를 밀며 움직여 간다. 한결 선명해진 푸른 빛 위로 맑게 트인 하늘이 더 새롭다. 구름도 여유롭게 떠있다. 돌아보니 '새롭다'는 말조차도 새롭게 여겨진다. 그것은 자연의 순환을 통해 한동안의 침체를 딛고 새로운 활력으로 되돌리는 힘에 의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난 시간들은 모두 새로운 초록을 펼치기 위한 참된 휴식이었던 셈이다.

이곳에서의 생활도 반이 더 지났다.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이제 정상으로 굴려 올리던 시간의 돌덩이가 아래를 향해 굴러 내리는 것이다. 그때부터 시간이 아주 잘 가고 있다. 시지프스 신화에서 나는 우리 삶의 모습을 읽어내곤 한다. 시지프스는 죄를 지어서 산의 정상으로 거대한 돌덩이를 굴려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산 정상에 이르는 순간 그 돌덩이는 다시 계곡으로 굴러 떨어진다. 그리고 시지프스는 다시 또 계곡으로 달려 내려가 그것을 끊임없이 산의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힘든 일을 감당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운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시지프스 신화에는 우리 삶에 내재하는 모순적인 의미를 간파해 주고 있다. 시지프스 신화에서 산의 정상은 인간에게는 이상의 세계이고 계곡은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미루어서 우리 인간은 추구하는 이상세계에 영원히 머물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도 깊이 만족하여 있지도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실의 계곡에서 이상세계인 산의 정상을 향하여 무거운 삶의 돌덩이를 굴리면서 올라가 그곳에 서게 되는 순간에 그곳은 곧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또 다시 다음 산의 정상을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시지프스 신화에는 동일한 공간의 계곡과 산 정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실은 바라다 보이는 산 정상에 가려진 다음 산의 정상들이 끝도 없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지프스의 반복되는 움직임은 점점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결국 시지프스에게는 다음 산의 정상을 향해 가는 길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 삶은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상승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상세계는 우리에게 절대 쉽게 닿을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현실에 최대한 충실하며 다음 정상을 향해 가는 삶이 최상의 자세라 할 수 있다.

나는 바로 그점에서 우리 삶이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삶이 순간적으로 성취된다면 일생동안 그 많은 시간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봄이 와서 반복되는 자연의 변화도 똑 같은 반복이 아니다. 거기에는 이미 나무의 성장이나 자연의 변화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봄은 어제의 봄이 아니며 또한 내일의 봄도 아니다. 그러므로 봄 속에는 발전의 의미도 있으며 동시에 시련의 의미도 함께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현실에서부터 출발하여 보다 멀리 내다보며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나의 정상에 선 사람들에게 그곳은 단지 다음 정상을 향해 선 계곡일 뿐이다. 그 앞에는 언제나 삶의 거대한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바로 저 위에 내가 돌아갈 한국이 정상으로 있듯이 말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2.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4.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5.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1.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2.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3.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4.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5.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