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완하 시인ㆍ한남대 교수 |
이곳에서의 생활도 반이 더 지났다.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이제 정상으로 굴려 올리던 시간의 돌덩이가 아래를 향해 굴러 내리는 것이다. 그때부터 시간이 아주 잘 가고 있다. 시지프스 신화에서 나는 우리 삶의 모습을 읽어내곤 한다. 시지프스는 죄를 지어서 산의 정상으로 거대한 돌덩이를 굴려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산 정상에 이르는 순간 그 돌덩이는 다시 계곡으로 굴러 떨어진다. 그리고 시지프스는 다시 또 계곡으로 달려 내려가 그것을 끊임없이 산의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힘든 일을 감당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운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시지프스 신화에는 우리 삶에 내재하는 모순적인 의미를 간파해 주고 있다. 시지프스 신화에서 산의 정상은 인간에게는 이상의 세계이고 계곡은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미루어서 우리 인간은 추구하는 이상세계에 영원히 머물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도 깊이 만족하여 있지도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실의 계곡에서 이상세계인 산의 정상을 향하여 무거운 삶의 돌덩이를 굴리면서 올라가 그곳에 서게 되는 순간에 그곳은 곧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또 다시 다음 산의 정상을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시지프스 신화에는 동일한 공간의 계곡과 산 정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실은 바라다 보이는 산 정상에 가려진 다음 산의 정상들이 끝도 없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지프스의 반복되는 움직임은 점점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결국 시지프스에게는 다음 산의 정상을 향해 가는 길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 삶은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상승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상세계는 우리에게 절대 쉽게 닿을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현실에 최대한 충실하며 다음 정상을 향해 가는 삶이 최상의 자세라 할 수 있다.
나는 바로 그점에서 우리 삶이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삶이 순간적으로 성취된다면 일생동안 그 많은 시간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봄이 와서 반복되는 자연의 변화도 똑 같은 반복이 아니다. 거기에는 이미 나무의 성장이나 자연의 변화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봄은 어제의 봄이 아니며 또한 내일의 봄도 아니다. 그러므로 봄 속에는 발전의 의미도 있으며 동시에 시련의 의미도 함께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현실에서부터 출발하여 보다 멀리 내다보며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나의 정상에 선 사람들에게 그곳은 단지 다음 정상을 향해 선 계곡일 뿐이다. 그 앞에는 언제나 삶의 거대한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바로 저 위에 내가 돌아갈 한국이 정상으로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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