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상상력이 빛나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감독: 팀 버튼. 출연: 미아 와시코우스키, 조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

<줄거리>
앨리스는 흰토끼를 쫓다가 이상한 구멍 속으로 빠진다. 그녀는 어렸을 적 이 구멍아래 ‘이상한 나라’에서 모험을 겪었었지만 지금은 모두 꿈이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나라’는 진짜 있었다. 그리고 모자장수를 비롯한 그곳 주민들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의 원작만큼이나 기묘한 상상력이 빛난다. 팀 버튼이 누군가. '가위손' '배트맨' '스위니 토드' 등 손대는 작품마다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하며 유머러스한, 독특한 광채를 발하는 상상력으로 '버튼스럽다(Burtonque)'는 조어를 탄생시켰던 감독 아닌가. 기괴하고 유머러스한 것으로 따지면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못지않다. 그런 둘이 만났으니 팬들이 한껏 기대감에 부푸는 게 당연하다.

팀 버튼이 원작 그대로 영화를 만들 리는 만무. 앨리스는 19살 처녀로 훌쩍 자랐고, '원더랜드'도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그런데 어렸을 적 앨리스가 다녀온 곳은 '원더랜드'가 아니고 '언더랜드'란다. 너무 어려서, '이상한 나라'로 잘못 알아들었다는 거다. 언더랜드는 꽃향기 풀풀 날리는 화사한 상상 속의 나라가 아니다. 틈만 나면 “목을 쳐라!”를 외쳐대는 공포정치의 화신 붉은 여왕과, 눈부시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의 소유자 하얀 여왕이 으르렁대는 음울한 세상이다. 전설에 따르면 앨리스는 붉은 여왕의 괴물 재버워키를 물리치고 언더랜드에 평화를 가져온단다. 줄거리도 꽤 흥미롭다. 살짝 맛이 간 듯한 모자장수 일당이 앨리스를 돕는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뚜껑을 연 '앨리스'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팀 버튼의 예전 영화들에 비하면 너무너무 소프트하다. 클래식의 재해석이라는 관점에서도 선과 악을 답습한 다른 영화와 차이가 없다. 팀 버튼만의 상상력을 기대했던 팬들은 실망감이 클 듯하다.

그러나 어린이가 주요 타깃이라는 점을 감안해 기대감을 조금 접는다면 나름대로 팀 버튼 월드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영화에 펼쳐진 시각적 상상력은 그런 흠을 잠시 잊을 만큼 즐겁다. 무엇보다 주 조연을 가리지 않은 캐릭터의 향연이란….

눈길을 끄는 캐릭터는 조니 뎁의 모자장수와 일명 '왕대그빡'으로 불리는 헬레나 본햄 카터의 붉은 여왕이다. 모자 만드는 사람의 직업병인 수은중독 탓에 살짝 미쳐버린 모자장수는 일차원적 이야기에 입체감을 불어넣는다. 컴퓨터그래픽의 힘을 빌려 확대한 초록색 눈동자는 어릿광대마냥 우습기도 하면서 처연한 느낌이다. 영화의 마지막, 모자장수의 '으쓱쿵짝' 춤은 절대로, 절대로 놓치지 마시라. 가분수인 붉은 여왕은 그 자체로 웃음거리다. 팀 버튼 감독의 아내이기도 한 헬레나는 세 시간 분장에 본래 크기보다 두 배 넘는 머리를 CG로 손대는 파격을 시도했다.

원하는 대로 사라졌다 나타나는 체셔고양이, 짜리몽땅 쌍둥이 형제 트위들리와 트위들덤, 지혜로운 애벌레 압솔렘, 흉측한 괴물 밴더스내치 등 책에서 보고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캐릭터들을 스크린에서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환호하게 만드는 영상이 즐비하다. 팀 버튼 마니아들은 아쉬울 테지만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는 흔치 않다.

영화를 보고 난 느낌. 왜 이 영화를 굳이 3D로 만들었을까. 어느 모로 따져 봐도 3D의 혜택이란 눈곱만치도 없는데. 입체효과 때문에 근사해지는 장면도 없고, 등장인물에 감정이 이입될 정도로 리얼한 상황 표현도 없다. 팀 버튼의 주특기인 독특한 디테일과 색감을 살리자면 오히려 2D가 낫지 않았을까 싶다. 혹시 3D 영상이 풍부했던 '아바타'를 봤기에 그런 생각이 든 건 아닐까. '아바타'의 폐해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