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인 듯 나는 아무래도
천만 년 전, 그 오래 전의 황진이이고 싶어.
그녀 입었던 속옷이라도 빌리고 싶어.
서리서리 얹어 놓였을 이부자릴 빌리고 싶어.
우선 꼽히는 위인이 세종시 정국에서 논쟁의 격(?)을 높인 '증자의 돼지'의 그 증자(曾子)다. 자식 가정교육용으로 애먼 돼지를 잡은 증자는 본명이 증삼. 논어에 나오는 15회 중 공자가 몸소 거론할 땐 '삼(參)!', 나머지는 '증자'다. 민자건(閔子蹇)은 5회 출현에 1회가 민자(閔子)다. 이상하게 유자(有子)도 '자'가 붙었다 말았다 한다. 외모가 공자를 닮은 그는 말씨도 공자 판박이다. 세어보면 논어 학이 편 3회는 유자, 안연 편 1회는 본명 유약(有若)이다.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는 어떤 분야나 해당된다. 아이언헤드가 뭉개지도록 연습하는 어느 골퍼, 대본을 100번 읽는 김희애, 점프 하나 완성에 3000번 넘어진 김연아의 정석을 여기서 제외할 수 없다. 학벌주의 화살을 받은 '공부의 신'도 극중 비법들이 나름대로 기본 이치를 일깨워줬다. 아이들이 “간만에 감동 먹었다” 하는데 이 이상 웬 잣대인가. '천하대' 가고 못 가곤 다음 문제다. 또한 겉모양과 속내가 잘 어울린 문질빈빈(文質彬彬)은 글쓰기의 기본이다. 사족이 많으면 뱀이 노래기 같고, 그 뱀발의 지엽말절에 쏠린 독자는 정녕 뱀의 모습과 행동을 놓칠 것이다.
『황진이 속곳을 빌리다』(이상교)라는 제목만 야한 시집에서 겨우 건져낸 저 위의 빛나는 구절을 보자. 이 잡듯 뒤지고 나니 알겠다. 자신에 맞은 체위와 테크닉 연마가 효용 없을 때, 황진이 '포스'를 빌리고픈 시적 화자의 염원에 공감한다. 엄밀한 의미로 '저절로' 얻어지는 건 거의 없다. 가장 값비싼 섹스는 돈이 오가지 않는 섹스라고 배우 우디 앨런이 설파했거니와, 공짜의 대가가 가장 비쌀는지 모른다. 어설픈 개인기로 묻어 잘사는 사람도 물론 있다.
그러한 잔기술이 날뛸 때 세상은 더 시끄럽다. 식량 보기를 하늘같이 하던 시절에도 최고 덕목이던 신의는 아직 정치의 기본이다. 기본기는 벼락치기로 배워지지 않으며, 생각만 너무 키우면 헛소리 지껄이는 계룡산 도사님 되기 딱 알맞다. 둘러치고 메치고 국민투표 논란에 휩싸인 세종시도 기본철학에서 멀어져 문제가 키워졌다. 기본 없는 사회와 국가의 장래는 밝지 않다. 새봄, 유산으로 받은 논어책을 바람에 말리며 유약, 아니 유자의 '기본'을 생각한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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