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유자(有子)를 읽는 밤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안과밖]유자(有子)를 읽는 밤

  • 승인 2010-03-03 10:32
  • 신문게재 2010-03-04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마지막인 듯 나는 아무래도
천만 년 전, 그 오래 전의 황진이이고 싶어.
그녀 입었던 속옷이라도 빌리고 싶어.
서리서리 얹어 놓였을 이부자릴 빌리고 싶어.

공자, 맹자, 장자, 노자, 주자, 순자, 묵자 등의 '자(子)'는 본받을 만한 스승, 정신의 한 축을 이루는 분들에 붙는 지존의 돌림자다. 공자 문하에 '자' 자 돌림 특별예우를 받는 제자가 있다. 그것도 셋씩이나.

우선 꼽히는 위인이 세종시 정국에서 논쟁의 격(?)을 높인 '증자의 돼지'의 그 증자(曾子)다. 자식 가정교육용으로 애먼 돼지를 잡은 증자는 본명이 증삼. 논어에 나오는 15회 중 공자가 몸소 거론할 땐 '삼(參)!', 나머지는 '증자'다. 민자건(閔子蹇)은 5회 출현에 1회가 민자(閔子)다. 이상하게 유자(有子)도 '자'가 붙었다 말았다 한다. 외모가 공자를 닮은 그는 말씨도 공자 판박이다. 세어보면 논어 학이 편 3회는 유자, 안연 편 1회는 본명 유약(有若)이다.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현상이다.

공자 사후, 대신해 섬기자 했을 만큼의 덕망을 갖춘 유자. 늘 도덕군자 같고 인간미가 약에 쓰려도 없어 지루해하던 그분 말씀이 오늘아침 들러붙는다. 유자 가라사대, 군자무본 본립이도생(君子務本 本立而道生)이라. 군자는 기본에 힘쓴다. 온힘 다해 근본에 힘쓰니, 기초가 서면 도가 생긴다. 양주의 위아(爲我)나 공자의 위기(爲己)나, 의(義)에 기쁘든 이(利)에 기뻐하든, 대인의 큰 이기주의에 살건 소인의 작은 이기주의에 살거나 기본이 빠지면 안 되는 것이다. 이 철학사상체계가 싫어도 상관없다. 말하려는 기본기는 대부분 노력의 산물이다.

이는 어떤 분야나 해당된다. 아이언헤드가 뭉개지도록 연습하는 어느 골퍼, 대본을 100번 읽는 김희애, 점프 하나 완성에 3000번 넘어진 김연아의 정석을 여기서 제외할 수 없다. 학벌주의 화살을 받은 '공부의 신'도 극중 비법들이 나름대로 기본 이치를 일깨워줬다. 아이들이 “간만에 감동 먹었다” 하는데 이 이상 웬 잣대인가. '천하대' 가고 못 가곤 다음 문제다. 또한 겉모양과 속내가 잘 어울린 문질빈빈(文質彬彬)은 글쓰기의 기본이다. 사족이 많으면 뱀이 노래기 같고, 그 뱀발의 지엽말절에 쏠린 독자는 정녕 뱀의 모습과 행동을 놓칠 것이다.

『황진이 속곳을 빌리다』(이상교)라는 제목만 야한 시집에서 겨우 건져낸 저 위의 빛나는 구절을 보자. 이 잡듯 뒤지고 나니 알겠다. 자신에 맞은 체위와 테크닉 연마가 효용 없을 때, 황진이 '포스'를 빌리고픈 시적 화자의 염원에 공감한다. 엄밀한 의미로 '저절로' 얻어지는 건 거의 없다. 가장 값비싼 섹스는 돈이 오가지 않는 섹스라고 배우 우디 앨런이 설파했거니와, 공짜의 대가가 가장 비쌀는지 모른다. 어설픈 개인기로 묻어 잘사는 사람도 물론 있다.

그러한 잔기술이 날뛸 때 세상은 더 시끄럽다. 식량 보기를 하늘같이 하던 시절에도 최고 덕목이던 신의는 아직 정치의 기본이다. 기본기는 벼락치기로 배워지지 않으며, 생각만 너무 키우면 헛소리 지껄이는 계룡산 도사님 되기 딱 알맞다. 둘러치고 메치고 국민투표 논란에 휩싸인 세종시도 기본철학에서 멀어져 문제가 키워졌다. 기본 없는 사회와 국가의 장래는 밝지 않다. 새봄, 유산으로 받은 논어책을 바람에 말리며 유약, 아니 유자의 '기본'을 생각한다. /최충식 논설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