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과 함께 전기통신사업의 양적 발전은 1960년대 들어 4차에 걸쳐 진행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한편 기술적 발전도 이룩할 수 있게 됐다.
1962년 당시 일반전화 가입자 수는 고작 12만. 하지만 이후 경제발전과 더불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수요를 따라잡기에는 통신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시설 공급에 큰 차질이 생겼다. 이후에도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당시 개인소유로 양도할 수 있었던 백색전화는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질 만큼 희소한 가치를 지녔다.
그도 그럴 것이 1981년 326만의 전화가입자를 확보했으나 공급률이 75%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큰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당시 백색전화 한대 가격이 200만 원 이상이었고 쌀 80kg 한 가마에 6만3000원 정도였으니 현재의 KT 일반전화 가입비 6만 원과 비교를 해 봐도 실로 엄청난 차이다.
흔하디 흔한 것이 돼 버린 요즘의 전화와는 사뭇 달랐던 그 시절의 소위 백색전화와 청색전화는 단순한 전화를 넘어 우리의 아픔과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필자도 20대 초반부터 정보통신 분야의 한우물을 파오고 있지만 지난 30여 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IT 기술력은 실로 기적과도 같은 것임을 때때로 실감하곤 한다.
한편, 이 시기 금산위성지구국의 건설로 위성통신 시대가 도래했고 서울~부산 간 시설 구축으로 시외통화의 획기적인 개선도 이루어졌다.
특히 한·일간 해저케이블의 개통은 국제통신을 가능하게 해 경제발전과 세계화를 향한 우리 민족의 재도약에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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