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윤 건양대 대학원장 |
최근 학교 교육이 학원에게 완패했다는 언론보도는 교육계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예견된 사건이다. 그동안 교육계는 주위의 걱정에 관심을 두지도 않고 닥쳐오는 냉혹한 현실을 애써 외면해 왔다. 철밥통을 찬 계층들이 갖는 특유의 폐쇄성과 자기 보호 본능이 교육계 역시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더 우수한 교육서비스를 추구하는데 반해 학교사회는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이를 더 먹고 경력이 앞선다고 모든 점에서 앞서 있어야 한다는 구시대적 발상이 잔존하고 통하는 곳이 바로 교육계다. 그러나 교육계의 의지와 관계없이 시대는 변하고 있다. 사고체계가 달라진 학생들은 구시대적 가치관을 무조건 본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세속에 물들대로 물든 교사들이 과연 완벽하게 학생들의 귀감이 된다고 내세울 수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거기에 맞는 학교, 교사, 학생의 정체성이 재정립되어야 했지만, 학교는 변화의 요구를 애써 회피해 왔다. 대학사회는 오히려 10여 년 전부터 강의 및 업적평가가 일반화되고 심지어는 공개되기까지 하는데 교사사회만은 안 된다고 버텨왔다. 사회적 압력 때문에 이제야 억지로 수용하는 모양새다.
교육계에 대한 사회적 불신은 최근 불거진 교장과 장학사 인사 비리로 인해 극에 달하고 있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스승의 날에 학생들이 학원 선생에게는 선물을 해도 학교 교사에게는 하지 않는 풍조로 바뀌었다.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의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고 대놓고 비아냥거린다.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것은 학교의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는 낙후된 제도의 탓도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학교의 중심인 교사들에게 있다. 신문에 보도된 대로 실력, 열정, 인성 모든 분야에서 학원 강사들에게 밀리고 있다. 학교 담임보다 학원 강사에게 입시상담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신뢰할 수 있다는 학생들의 생각과 평가에 그 답이 있다.
세상이 뒤집히지 않는 한 당분간 학교는 필요하다. 국가와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과 철학을 집단적으로 저렴하게 교육시킬 수 있는 조직은 학교밖에 없다. 그런데 교육의 수요자 계층이 학교를 불신하고 있으니 국가나 사회가 학교관리와 운영에 실패하고 있는 셈이다. 교육계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희생이 요구된다.
즉, 학원 강사들보다 더 높은 실력을 보여주고, 더 강렬한 열정으로 지도해야 하며, 더 인간적으로 학생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결과에 대하여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교육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교사는 교단을 떠나야 한다. 학교는 국가와 사회, 교육 수요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지 특정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했다. 학교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교사가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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