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최대성과는 단연 세계인구의 4분의 1이 사용하는 한자의 원형인 갑골문(甲骨文)인데 지금까지 출토된 갑골편만도 무려 15만점이 넘는다.
▲ 유적지 내에 있는 은허박물관 내부. 갑골문을 비롯해 도기, 청동기, 옥기 등 은허에서 출토된 국보급 유물 500여 점을 볼 수 있다. |
국가 통치자 갑골 이용해 길흉 점쳐
갑골은 동물의 견갑골(肩甲骨)이나 거북이의 복갑(腹甲)의 한 면에 불을 지져 다른 면에 나타나는 조짐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점복(占卜)행위로 지난해 11월 개관한 중국문자박물관에도 왕이 갑골을 이용해 점복을 치는 모습이 전시물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인의 정신세계나 제사활동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 점복은 통치자가 점복을 이용해 통치 권력이나 왕통을 유지하는데 사용되었는데 특히 은대에 와서는 선왕선고(先王先考)를 대상으로 하는 점복활동이 성행했다.
은나라는 갑골에 하늘신과 조상신, 자연의 신령에게 군대, 형벌, 전쟁, 농업, 질병, 길흉 등 국가의 대사는 물론 소소한 일상까지 일일이 점을 친 뒤 이를 기록으로 남겼는데 15만 편의 갑골문에 쓰인 4500여개의 한자 중 현재 2000여개가 판독이 가능하다고 한다.
유적지 내에 있는 은허박물관에 가면 갑골문을 비롯해 도기, 청동기, 옥기 등 은허에서 출토된 국보급 유물 500여 점을 볼 수 있다.
은허유적지 발굴과 연구사업을 담당하는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안양분소 위에짠웨이(岳占偉)연구원은 “은허박물관은 중국에서 유일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은나라 문화재 박물관으로 은허를 찾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유적경관에 맞도록 건설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박물관은 갑골문 중 '원(洹)'자와 매우 비슷한데 이는 은허가 환수이(洹河)의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환수이가 상나라 문명의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끼친다는 뜻에서 온다”면서 “은허의 유물들이 모두 땅속에 있기 때문에 유적지 내에 박물관을 건립했으며 이곳에서 출토유물을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최대 청동솥 '사모무정' 눈길
은허에서 출토된 유물 중 5000여점이 넘는 청동기 유물과 2600여 점의 옥기 제작기술 또한 탁월한데 이중 세계 최대의 청동솥인 사모무정(司母戊鼎)은 높이 133㎝, 길이 79.2㎝에 무게만도 875㎏에 달한다.
은허유적지 답사에 동행한 한국전통문화학교 정석배 교수(문화유적학과)는 “신에게 제사를 올리기 위한 주기(酒器), 식기, 악기, 무기 등 은허의 청동기는 각양각색의 문양과 정교한 솜씨가 일품인데 은나라 무정왕(武丁王)의 부인이자 여장군이었던 부호(婦好)의 명문이 새겨진 청동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정복전쟁 이끈 '천하 여걸' 부호
무정왕은 은국대치(殷國大治)의 위업을 이룬 중흥군주로 갑골기록을 종합할 때 그에게는 64명의 여인이 있었으며 이중 비무(戊), 비신(辛), 비계(癸) 등 3명은 법정배우자였다. 비신은 바로 부호(婦好)가 죽은 뒤 받은 시호다.
지금까지 확인된 갑골문에서 '부호'라는 이름은 100여 곳 이상에서 확인되는데 갑골문에 따르면 그녀는 제사와 점복을 직접 챙겼을 뿐 아니라 무정의 명을 받아 정복전쟁에 손수 나가 공을 세운 천하의 여걸이었다.
말을 타고 갑옷을 입고 청동과(戈)를 휘두른 위풍당당한 여장군 부호는 1만3000명의 장수를 이끌고 오랑캐인 강족(羌族)은 물론 귀방(鬼方)과 토방(土方)을 토벌하는 등 제사와 군대를 주재하고 지휘하는 정치활동가이자 군사전략가, 야전사령관으로 무정왕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이렇듯 '여인천하'를 이끈 불세출의 여걸이었지만 은의 뒤를 이은 한족(漢族)집단이었던 주나라 때부터 여인의 지위는 최저층으로 떨어져 부호도 역사의 기록에서 배제되었다. 1976년 중국의 첫 여성고고학자 정전샹(鄭振香)이 농지정리가 한창인 은허 궁전종묘유적에서 120m밖에 떨어진 시골마을을 발굴하며 부호묘를 찾아내 청동기 468점, 옥기 755점, 골기 564점 등 1928점의 유물을 끌어올림으로써 역사 속 부호는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최정필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장(세종대 교수)은 “부호묘는 은허에서 유일한 완벽하게 보존된 은대 왕실무덤으로 동서로 4m, 남북으로 5.6m, 깊이 7.5m 크기인데 묘 위에는 '모신종(母辛宗)'이라는 향당(享堂)이 있다”며 “유적지 훼손과 진정성이 우려되는데도 부호묘 바로 옆에 향당을 지은 중국 정부의 과감함이 엿보이는데 공주 부여의 백제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발상의 전환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적 내 한국어 안내판 '오류 투성이'
인천공항에서 하남성 정주시(鄭州市)를 오가는 직항로가 개설된 이후 은허유적을 찾는 한국 관광객이 부쩍 늘었으며 김병모 전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이 은허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심사위원이었던 탓인지 유적지 곳곳에는 우리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안내판의 대부분이 한국어 표기가 틀렸으며 일부는 전혀 엉뚱하게 번역된 것들이 많아 답사단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실제로 은허박물관 가는 길을 표시한 안내판에는 한자로는 '殷墟博物館', 영문으로는 'Yin xu museum', 일본어로는 '殷墟の博物館'으로 표기된데 비해 한글로는 'Yin왕조는 박물관을 파괴한다'고 적혀 있어 답사단을 깜짝 놀라게 했다.
또 'H127 갑골퇴적갱'은 '오라클본즈 No H127 구덩이 보증금'이라고, '乙七祭祀坑' 가는 길 은 '반 고분군 Comnlex B조'라고 어이없게 적었고 '담배를 피우지 마심시오' 등 오자투성이였다.
기자가 안내를 맡은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안양분소 위에짠웨이(岳占偉)연구원에게 안내판의 오류를 지적하며 수정을 요구하자 그는 거듭 사과하며 곧 수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국 하남성=임연희 기자 lyh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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