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연형 천양원 원장 |
그러나 우리는 두 선수와 또 다른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성시백 선수 모친 홍경희씨의 아름다운 감정 처리에 가슴 찡한 감동을 받았다.
다음 날 이호석은 훈련을 마친 뒤 관중석에 있는 성시백 선수의 어머니에게 찾아가 머리를 숙여 인사하며 전날 충돌 사고에 대한 미안함을 전했고 홍씨는 이호석을 안으며 “괜찮다! 둘 다 안 다쳤으니 됐다. 너도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얘기는 무시하고 앞으로 잘 해라”고 격려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성 선수도 사과하는 친구에게 “나는 정말 괜찮다. 둘 다 안다친 것으로 만족한다. 넘어지는 순간 내 스케이트 날이 너의 얼굴을 향하고 있더라. 놀라서 재빨리 발을 들었는데 네가 맞지 않아 다행이었다.”며 놓친 메달보다 친구를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나는 이들의 대화 중에 “사과”와 “괜찮다!”는 언어가 주는 강열함에 놀랐다. 이런 언어를 상담학에서 생명의 언어라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이 두 단어가 풍성하게 사용된다면 좋은 친구들이 있고 선의와 사랑이 있고, 용서와 너그러움이 있는 곳이 되리라고 믿어도 될 것 같다.
인간은 다양한 관계성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가족, 친척, 이웃, 친구,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관계성이 형성 된다. 관계성에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기쁨과 슬픔과 고통, 유익과 손해, 승리와 패배를 비롯하여 선한 감정과 악감을 주고받기도 한다. 부정적인 관계성이 형성되면 소통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감정의 응어리가 인간관계를 꽉 막아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생명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인격형성에 있어서 성공과 실패에는 반드시 어떤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 계기란 지도자가 또는 서로가 교환하는 말 한마디 일 수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특별히 아동이나 청소년들의 지도자들은 따뜻한 말, 희망을 주는 말, 용기를 주는 말, 인정해 주는 말,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 언어가 아이들을 생동감 넘치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다. 반대로 “싹수 없는놈, 쓸모없는 놈, 못난 놈, 장래성 없는 놈.”등과 같은 부정적인 말을 듣고 자라는 아이가 어떤 자아상을 가지고 성장할 것인가는 명약관화한 일이다. 우리는 많은 상담지도자들의 보고서를 통해서 비행청소년들이나 범죄자들은 대부분 성장과정에서 부모와 이웃들로부터 악담을 듣고 자란 경우가 태반이란 말을 듣는다. 나도 그 말에 동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어는 심판의 기준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심판 날에 자기가 말한 온갖 쓸데없는 말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 너는 네가 한 말로, 무죄 선고를 받기도하고, 유죄 선고를 받기도할 것이다.”라고.
생명의 언어를 주고받은 두 선수 중 한 명은 21일 은메달을 획득했고, 또한 27일 500m경주와 5,000m계주 결승에 둘 다 진출하여 메달에 재도전 하게 되었다. 꼭 승리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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