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튼은 한국의 독립을 위해 앞장선 대표적 선교사로 근대 한국사회에 큰 기여를 했지만 언더우드 선교사처럼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다.
4대(代)에 걸쳐 한국에서 봉사하고 선교한 린튼가의 특별한 인연은 린튼 목사가 1912년 대학을 갓 졸업한 21세의 나이에 미국 남 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발을 디디면서부터다.
그는 말년에 암 투병을 하면서도 1956년 대전기독학관을 설립했고 1959년 대전대학(현 한남대)으로 인가를 받아 초대학장에 취임했다. 병 치료도 미루며 한남대 설립에 매진했던 그는 1960년 6월 미국으로 건너가 병원에 입원했지만 그해 8월에 숨졌다.
이런 그의 한국사랑은 가족과 후손들에게로 고스란히 이어졌고 한남대는 그를 기리기 위해 1994년 그의 한국 이름을 딴 인돈학술원을 설립, 매년 각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인사에게 인돈문화상을 시상하고 있으며, 국제학부인 '린튼글로벌칼리지'를 설립해 우수한 국제화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한편, 3월 1일 오전10시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리는 시상식에는 유족을 대표해 손자인 인요한(John Linton) 신촌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이 참석할 예정이다./강순욱 기자 ksw@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