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오 대전문화역사진흥회장 |
그만큼 이곳의 가치는 말로 다할 수 없이 큰 것이다. 기록을 보면 용계동유적의 보존 여부를 심의했던 지도위원들은 다섯 명의 대학 교수들이었던 것 같다. 이 지도위원들이 용계동유적을 보존 하지 않기로 결정하게 된 큰 요인 중의 하나가, 표면상 유적지의 대부분이 원형대로 발굴되지 못하고 훼손되어 있는 점을 들었다고 들었다.
세상에 한 두 곳도 아니고 수천 년을 지나온 원삼국시대 주거지 350기가, 모두 훼손되지 않고 원형대로 발굴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설령 원형이 다소 훼손된 곳이 있다 하더라도 주거지로서의 형태가 확인된 것만 350기에 달한다면, 그 보존가치는 충분하고도 남는 것 아닌가?
개발논리와 그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유적지를 적당히 뭉개고 공사를 진행시켜, 자신들의 이익만을 얻으려 한다면, 누가 그 사욕을 꺾을 수 있는가?
그 넓고 소중했던 용계동 유적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 것은, 빠른 개발 만능주의의 만연, 사회적 무관심, 그저 그렇게 적당히 넘어가는 양심, 담당공무원의 태만 등이 자리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이를 바로 잡지 못한다면 앞으로 그 어떤 유적이 나와도 보존하기 어려울 것이다. 유성구는 앞으로 상대동의 고려시대 유적지를 문화유적관광지로 개발할 것이라 한다. 이왕 유적관광지로 개발할 것이라면 이곳의 유적만으로는 유적지다운 면모를 갖추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지난날 대전지역에서 발굴된 그 숱한 유적지들은 두어 곳을 제외하고는 개발에 밀려 모두 박살나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로도 발굴될 유적과 유물의 장래를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지경에 빠지게 되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는, 대전에 변변한 시립박물관 하나 없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고귀한 유물이 아무리 많이 출토되어도, 마땅히 보관 전시할 시립박물관이 없다보니, 대전지역에서 발굴되는 유물은 먼저 보고 집어갈 수 있는 자가 주인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유적, 유물의 관할권은 국가에 있다지만, 그 유물이 출토되면 그 유물이 출토된 지역의 기득권은 절대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지역에서 나온 유물은 우리지역에서 보존 관리할 수 있는 시립박물관이 있어야, 그 기득권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해방 전은 그만두고 해방 후에 대전지역에서 나온 유물 유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너무 많아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으며, 시는 그 정확한 실태조차도 제대로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대전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각종 건설 현장에서 나오는 유물만 해도 한해 평균 수백 점이 넘는다고 한다. 그렇게 많이 나오는 유물들이 뿔뿔이 흩어져 각지로 가버리기 때문에 십 수년만 지나면 그 유물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파악하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참으로 대전의 시립박물관은 하루속히 마련돼야 한다.
시립박물관의 가치를 이해하고 진정 세우고자 하는 철학이나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변변한 시립박물관 하나 없이 대전에 제대로 된 문화는 절대 설 수 없다. 이제라도 대전에 대전다운 진정한 문화와 역사의 뿌리를 세우기 위하여, 하루빨리 시립박물관을 건립해야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