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도시의 대학교수 파커는 퇴근길 기차역에서 길을 잃은 아키타견 강아지를 발견한다. 아내 조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커는 강아지를 ‘하치’라고 부르며 키우기로 결심한다. 파커는 수업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고, 하치는 오지 않는 주인을 마중하려 기차역으로 나간다.
새로 개봉된 ‘하치이야기’는 할리우드 버전이다. 이야기는 원작과 다르지 않다. 우에노 교수가 파커 교수로 대체됐고, 태어난 지 한 달된 강아지가 우에노 교수에게 보내지는 원작과 달리 기차역에서 길 잃은 강아지를 발견해 집에 데려가고, 목걸이에 여덟 팔(八)자가 쓰여 있는 걸 보고 ‘하치’라고 부르는 것으로 각색됐을 뿐. 흥미로운 건 사람과 개의 시선을 교차 편집해 보여준다는 거다.
사람의 시선은 컬러로, 개의 시선은 흑백화면으로 보여줌으로써 개가 사람의 일을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들려준다. 똑같은 종이라도 충견이 따로 있는 건 그 때문일 거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거기까진 좋다. 문제는 너무나도 일본적인 충견이야기를 할리우드식으로 각색하면서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동양의 판타지를 우겨넣으려 무리수를 둔다는 점이다. 일본 개 아키타견을 사무라이도와 묶으려는 시도가 그것인데, 너무 순진한 나머지 종종 웃기기도 한다. 파커는 일본 검도를 배우고, 그의 일본계 친구는 “아키타견은 공을 물어오지 않아. 그런 걸 원한다면 스파니엘을 키우게”라고 말한다. 스파니엘 주인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일이다.
시점을 현대로 가져왔으면서도 30년대 일본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것도 어이가 없다. 역 주변 사람들은 낡은 기차 밑에서 굶주리며 비를 피하는 하치를 보고도 보금자리를 만들어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치의 기사가 신문에 나도 동물보호단체가 전혀 찾지도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 ‘개 팔자가 상팔자’인 현대에 이게 가능한 일일까.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미국에선 극장 개봉 없이 DVD로 직행했다.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개봉했다간 무슨 욕을 들을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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