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등록금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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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선]등록금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금요논단]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10-02-18 14:19
  • 신문게재 2010-02-19 20면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소년은 일곱 살에 아비를 잃었다. 홀로 남겨진 어미는 여전히 궁핍하고 건사해야 할 아이들의 머릿수는 풍성했다. 칡뿌리가 소나무를 칭칭 휘감아 옥죄듯 가년스런 소년의 '소년기'는 지난한 애옥살이였다. 소풍갈 때 소년은 알사탕을 사먹지 못했다. 10원이 없었다. 육성회비를 못내게 되자 수시로 까까머리에 알밤이 알사탕처럼 돋아났다.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동무들이 버스를 대절해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 아침, 가난 때문에 홀로 남겨진 열 세살 소년은 골목길에 숨었다가 출발하는 버스 유리창에 돌맹이를 던졌다. 버스에 탄 동무들은 깨친 유리창에 놀라고 버스에 오르지 못한 소년은 가슴이 째지는 소리를 들었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담임 선생님은 소년을 불러서 가만히 안아주셨다. 학교 교육은 그걸로 끝났다. 3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성실하게 살아 온 소년의 영민한 딸은 며칠 전 대학 등록금을 납부했다. 딸의 등록금은 버겁게 살아가는 소년이 벌었다.

소녀는 쾌활하고 용의가 단정했다. 생활기록부에는 소녀의 두뇌가 우수하고 학업성적도 뛰어나다고 기록됐다. 그러나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 소녀는 지천명을 넘어서야 중학생이 되고 쉰 일곱 살에 꿈에 그리던 여고생이 되었다. 단풍잎이 빨갛게 물드는 지난 가을, 여고생 교복을 차려입은 소녀는 경주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아줌마' 소녀들은 그녀들의 친구들이 사십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불국사 뜰에서 함박꽃 같은 단체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소녀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소녀는 일기에다가 '뒤척이며 괜스레 주방을 오가며 냉장고 문만 열고 닫기를 반복하면서 밤을 지냈다'고 썼다. 그 소녀의 잘 생긴 아들이 며칠 전 대학 등록금을 냈다. 아마도 아들의 등록금은 과자를 굽는 소녀가 벌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가족의 언론사를 작성해보라는 숙제를 냈다. 대부분 '말하며 살아 온 사람'으로서 부모님의 역사를 추적했다. 부모님의 발자취가 남겨진 곳이 어디건 학생들은 애써 찾아 갔노라고 보고했다. 법원에도 들르고 동사무소에도 가보고 부모님 회사의 동료 사무실에도 찾아갔다. 부모님께서 다니셨던 학교도 찾아가 생활기록부를 받아왔는데 적지 않은 학생들의 부모님은 초등학교 이상의 생활기록부를 갖고 있지 못했다. 가난 때문이었다. 소년과 소녀 이야기 역시 필자의 학생들이 제출한 보고서에 적힌 내용을 옮긴 것이다.

우리 지역의 상당수 대학들이 등록금을 동결했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고 본다. 그러나 등록금 동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 얼마씩 사용할 것인가하는 배분계획, 일명 기획예산심의일 것이다. 각 대학의 정보공시사이트 2009년 자료를 확인한 결과 우리 지역 사립대학들은 운영수입의 대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 등록금 의존율은 90%가까운 반면 운영지출 중에서 연구학생경비 부문은 3분의 1을 넘지 못한다. 심지어 한 대학은 23%에 불과하다. 인근 대구지역의 등록금 의존율은 80% 언저리인데 연구학생경비지출 비율은 우리 지역보다 낮지 않다. 재적생 1인당 연구학생경비 금액은 100여 만원까지 차이가 지기도 한다. 등록금 의존율은 높고 학생교육비 지출은 턱없이 낮게 나타난다. 매해 비슷한 양상을 되풀이하고 있다. 도대체 등록금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등록금 동결에도 불구하고 교직원 보수와 관리운영비는 자연스럽게 인상될 터여서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연구 및 학생교육부문 예산은 상당히 축소될 수 밖에 없다. 등록금 동결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학교예산의 심의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이유이다. 우리 지역의 어떤 대학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올해 대학예산 심의위원회 회의를 한 두시간만에 후다닥 해치웠다고 하고 어떤 대학은 학생들의 예산공개요구를 일언지하에 묵살했다고 한다. 학생대표들에게 예산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가면서 단돈 몇 만원이라도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심의하는 것은 대학의 보직자들과 관계 직원들에게 부여된 지극히 당연한 과업이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한 소년은 오늘밤에도 땀에 절은 타인들의 옷을 빨래하고 소녀는 하냥 새벽마다 과자를 구워 아들 딸들의 등록금을 만들어내야 한다. 등록금 제대로 써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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