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찬 목원대 교수 |
또 자공이 묻기를 '부득이 남은 족식(足食)과 민신(民信) 중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먹을 것을 그만두라(去食)'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감(信賴感)을 상실하면 정치를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공자가 말하는 위정자 혹은 통치자에 대한 신뢰는 모든 사회적 신뢰(social trust)의 출발이다.
공자가 왕권(王權)정치에서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민신(民信)은 근대정치에서, 국가제도에 대한 신뢰,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 그리고 정치지도자(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 근대민족국가에서는 제도화를 통해 권력사용의 합리성, 투명성, 공정성을 확보함으로써, 모든 국가 구성원들이 법의 판단과 통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대인신뢰(對人信賴)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면, 부패가 만연한 사회에서 동료시민들 사이의 신뢰를 기대하는 것이 어렵다. 특히 위정자들이 부패하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 우호적인 감정이 넘쳐흐르는 경우는 없다.
잉글하트(Ronald Inglehart)나 푸트남(Robert Putnam)과 같은 신뢰학자들에 따르면, 대인신뢰가 가장 낮은 사회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필리핀과 같은 부패수준이 높고 법의 통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다. 반면에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대인신뢰수준을 보여주는 사회는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국가들이다.
한 국가의 사회적 신뢰는 경제발전 정도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국민소득이 상승한다고 해서 신뢰수준이 필연적으로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는 전형적인 저(低)신뢰 사회로 고통 받고 있다. 이탈리아 사회는 '사적 공간에서 행복하고 공중생활(public life)은 불만으로 가득 찬 사회', 혹은 '근대화 없는 탈근대 사회'로 표현된다.
이탈리아인들은 아르마니(Armani), 구찌(Gucci), 프라다 (Prada)를 발명하고, 그리고 신기에 가까운 축구를 즐기지만 도시의 쓰레기를 해결할 능력마저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탈리아 정치 엘리트들은 부패하고 약속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 따라서 국가, 제도, 그리고 정치 엘리트들이 시민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6·2 지방선거가 석달 남짓 남아 있다. 선거는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정책권한(mandate)을 위임받는 정치적 절차이다. 이 정치적 절차에서 후보자와 유권자 사이의 정책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선거는 공염불이 된다. 6·2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공자의 민신 (民信)'을 중히 여길 것을 간곡히 권한다. 좋은 정치의 출발은 시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데서 출발한다.
민신(民信)을 하지 못하면, 공자의 분류법 데로 정치인들은 가장 저급한 사람들로 치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자가 55세에 정치를 접은 것은 가장 하급의 사람들과 범접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후보자들은 이를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