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강국을 자처하는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다. TV방송의 프라임 시간대에 독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저자와 독자가 토론을 즐기도록 한 것이 20년이 넘었다. 이웃나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아침10분독서운동, 가정독서운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독일, 캐나다, 러시아, 중국 등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들은 예외없이 책읽기에 몰두하고 있다. 가정과 사회, 학교와 회사, 도서관과 문화관에서 책읽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왜 그런가? 답은 간단하다. 책을 읽어야만 되기 때문이다. 지식기반사회에 접어든 이 시대가 책을 읽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렵사회 및 농경사회를 거친 인류는 이제 산업사회를 지나 지식기반사회를 향하여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지식기반사회는 말 그대로 지식을 기반으로 재화와 가치를 생산하는 사회다. 전에는 근력과 육체노동이 생산현장을 주도하였지만 이제 그 자리는 지력과 두뇌노동이 대신 떠맡기 시작했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크게 늘어난 것도 이와 같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분석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어야 한다. 지력을 키우고 두뇌노동의 숙련도를 끌어올리려면 언제 어디서나 책을 집어들어야 한다. 주변에 흘러다니는 정보가 차고 넘치며 접근 또한 수월해졌지만 그것은 불특정 다수의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는 것들이다. 지식은 그러한 정보를 불러들여 문제를 해결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도록 가공하고 재구성할 때에야 솟아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지식과 정보는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고 그 정보를 그 지식으로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행위가 독서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제러미 러프킨은 2025년경에 이르면 노동력은 현재의 5%만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산업혁명 초기에 기계파괴운동이 벌어진 사례를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찾아볼 수 있거니와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리라는 예측은 미래학자의 연구결과에 기대지 않더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미 그와 같은 현상은 우리들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95%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앞서가는 국가들이 한결같이 독서에 매달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국가경쟁력 나아가 국가생존력 확보의 해법을 책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금언은 오늘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여전히'가 아니라 '더욱' 절실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독서를 권장하던 시절에는 그런대로 여유와 낭만이 있었다. 인격을 함양하고 교양을 살찌우고 감수성을 키우기 위하여 책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식기반사회에 접어든 이즈음 독서는 생존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정도가 아니라 거미줄이 쳐질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반가운 것은 그 계절을 선도하는 것이 다름 아닌 책이라는 사실이다. 수상록, 서간집, 자서전, 칼럼집, 시집 등 지역의 리더가 되고자 하는 분들의 출판기념회가 꼬리를 물고 있다. 지금으로 봐서는 그들 중 누가 리더로 선출되더라도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시나 편지를 쓰듯이 주변을 끌어안고 칼럼집이나 자서전을 엮듯이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라면 지역사회를 이끌고 나가는 리더로서의 자격에 손색은 없다. 책을 정말로 좋아하는 리더와 함께라면 미래의 경쟁력은 샘물처럼 솟아날 것이고 교양과 품격은 강물처럼 넘실거리지 않겠는가?
다만 한 가지 주문을 보태보자면 생태와 환경에도 신경을 써주십사 하는 것이다. 책 하나를 펴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나무가 베어지는지 그 분들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칠 수 있다면 나머지는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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