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며칠 뒤 한 일간지는 우리나라 행정수도 계획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김안제 교수를 인터뷰했다. 그는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임시행정수도 건설 사업에 참여하고 참여정부 시절 초대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장을 맡았다. 그의 말이다. “정치라는 것은 국민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그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2002년 선거에서 신행정수도 건설이라는 공약은 노무현 후보 개인의 생각이 아닙니다. 국민들 마음속에 있는 것, '이랬으면 좋겠다', '이런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을 정확히 짚어서 공약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고 당선에 영향을 준 것입니다.” “수도권의 과밀이나 지방의 발전에 대한 국민들의 여망이 수십 년 쌓여왔는데, 노 대통령이 그것을 짚은 것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못 다 쓴 회고록'에서 행정수도 건설 공약이 사회적 소통에 기초한 시대적 과제였음을 밝혔다. 그가 남긴 말이다. “선거공약에 시대적 과제가 표현된다. 공약은 후보 개인이 일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의 소통을 통하여 만들어진다. 그러나 모든 공약이 시대적 과제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선거공약은 평면적으로 보면 만물상이다. 이익집단에 대한 분야별 공약이 있고, 시민 모두에게 공통되는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공약이 있다. 포괄적인 공약 중에서도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핵심이 된 공약과 캠페인이 시대적 과제를 담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명박 식 상대방 생각 '씹기'는 세종시 수정안 강행의 일선에 선 정부여당 인사들에게 전수되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이달 4일 국회에서 “세종시 문제는 7년 전에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서 만들어낸 아이디어”라고 폄훼했다. 그 하루 전 권태신 국무총리 실장은 “원안대로 하면 사회주의 도시가 된다. 발전안(수정안)으로 가야겠다는 게 충청민 저변의 민심”이라고 '소설'을 썼다.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라고 빠질쏘냐. 그는 아예 같은 당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해 “원안이 좋아서 찬성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자의적으로 단정했다.
이들은 정말 상대의 의중을 그렇게 파악하는 걸까, 아니면 혹세무민하려는 심산일까.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설득학 교과서는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선 타인의 마음부터 헤아리라고 말한다. 이견은 말 그대로 다를 뿐 틀린 생각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와 다른 견해라고 무시하고 깔보아선 될 일도 안 된다. 상대방을 선의로 대하는 자세가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인 것이다. 그런데 대체 이 나라 권력자들의 눈과 귀는 하나같이 먹통인가.
선남선녀도 '마음 도둑'이 되라고 권유받는 시대다. 사람의 마음을 훔치지 못하고선 사랑도, 취업도, 장사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컬럼비아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세계적인 사이코패스 전문가인 로버트 헤어 박사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 없이 경쟁만 강조하는 사회, 이기는 자만이 추앙받는 사회에서 사이코패스는 필연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가의 백년대계 운운하며 국론을 분열시킨 당사자들이 이제라도 깨우치길 바란다. 당신들이 하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든 하찮은 일이든 관계없다. 당신들이 누군가와 시간을 보낼 때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의견을 존중하라. 그것만으로도 어떤 사람은 이전과 다르게 생각하게 될지 모른다. 그런 하루가 의미 있는 하루고, 그런 사회야말로 살 만한 사회 아니던가.
그리고 찬찬히 생각해보시라. 왜 세종시 논란이 가라앉기는커녕 날로 증폭되는지. 그건 누구 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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