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밤 9시 충남대병원 응급실.
응급의료센터 중환자계 한편에는 10여명의 보호자들로 둘러싸인 장 모 할아버지(77)가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있다. 명절을 맞아 온가족이 모였지만 장 할아버지가 며칠째 의식이 없자 놀란 가족들이 응급실로 할아버지를 모셨다.
가족들은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3일째 의식이 없었다는 장 할아버지는 의외로 의료진의 간단한 처치로 의식을 차렸다. 화근은 3일전 처방받은 딸꾹질을 멈추게하는 약. 딸꾹질을 멈추게하는 벤조계열 약은 수면제 성분을 포함하고 있었고, 잠을 깨우는 약을 주사하고 나서야 가족들을 알아보며 의식을 찾았다.
▲ 충남대종합병원의 응급의료센터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공간이다. 밤늦은 시각, 앰블란스에 실려온 응급환자를 살피는 의료진들은 하루종일 긴박한 상황속에서 촌각을 다투며 일한다. 생명을 소중함을 지치기 위해 힘쓰는 그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전한다./이민희 기자 |
밤 11시가 넘어서면서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이 급작스럽게 늘었다.
차례상에 오르는 동태전을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려 응급실을 찾은 조모 할머니. 오징어를 먹고 온몸에 발진이 나서 내원한 환자가 있는가 하면, 깜깜한 주방에서 낙스를 물로 오인하고 마셨다는 56살 아저씨도 걱정스런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119 구급대도 끊임없이 환자들을 병원에 이송하느라 바빴다. 속이 뒤틀리는 복통을 호소하며 울부짖는 어린이를 이송해 온 서정은 구급대원은 “설 명절 이틀동안 과식에 의한 급체와 과음으로 인한 음주로 인한 출동이 가장 많았다”라고 말했다.
응급 수술실도 분주했다. 급작스런 부상으로 손이 찢어진 환자와 부딪혀 이마가 찢어진 환자, 교통사고로 다리가 골절된 환자까지 응급 수술을 하는 외과 의사는 밀려드는 환자를 맞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중환자계에 침대에 손이 묶인 채 고통을 호소하는 한 환자도 눈에 띄었다. 보호자 없이 홀로 침대에 누워있는 이 환자는 길거리에서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혀 뇌출혈을 일으킨 환자였다. 행인의 신고로 병원을 찾게 된 환자는 다행히 지방에 있는 아들과 연락이 닿았지만 차편이 없어 홀로 응급실 신세를 지게됐다.
보호자와 연락이 닿을 경우는 다행이지만 연고가 없는 무연고자일 경우 상황이 복잡해진다. 불과 3년전만 하더라도 무연고 환자의 경우 의사소견서만 있으면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전액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최근들어 절차가 복잡해졌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지문채취 후 신원조회를 통해 보호자가 없을 경우에만 무연고 환자로 인정돼 치료비 지원이 가능해진다.
치료과정에서 보호자가 나왔을 경우 추후 병원비를 전혀 청구할 수가 없어 병원측은 의료진에 최소한의 진료만을 요구하기도 한다. 환자들과 설명절을 보내야 하지만 늘 보람이 있다고 말하는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3년차 이승한(31)씨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환자들을 진료를 통해 회생시키는 감동은 매력적이다. 응급의학을 선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감동때문”이라고 말했다.
1월 1일 설날밤은 그렇게 수많은 사연으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와 이를 치료하는 의료진의 분주한 손길로 저물어갔다. 휴일도 없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힘쓰는 40여명의 의료진의 노력과 함께. /김민영 기자 min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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