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불합리한 규정은 고치고, 복잡한 절차는 간소화하며, 필요한 예산은 세우고, 민원은 충분한 설득으로 해결하면 되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공무원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하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선에서 일을 하는데 있어서 이런 일들을 뜻대로, 요구대로 다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없지 않다.
일정규모 이상의 사업을 하자면, 국토이용계획,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 문화재 조사 등을 관련기관과의 협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풀어야할 일이 하나, 둘이 아닌데다가 민원까지 있게 되면 드는 시간과 비용은 이루 헤아릴 수 없게 되고 결국 주민의 불만을 가져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폐기물처리장 허가신청이 있을 경우, 허가를 하면 인근 주민들로부터, 불허가 처분을 하면 허가신청인으로부터 민원이 제기되고, 이런 경우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의 결과에 따라 처리하게 되니 모두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권한이 있는 기관에서의 유권해석이나 조정을 필요로 할 때,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거나, 자율성을 존중한다며 조치를 망설일 때도 깔끔한 일처리를 어렵게 한다.
현 정부 초기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어느 공단진입로의 전봇대 철거에 대한 것은 관련기관이 여럿이고,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적극적으로 나서서 처리하거나 책임 있게 조정하는 기능이 없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흔히 적극적으로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막상 합법성을 의식하여 머뭇거리는 경우가 있다.
감사기관 등에서 사안자체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면 업무담당자들은 자연히 위축되게 되고, 지적을 받았던 경험은 좀처럼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적극적인 일 처리를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도 경직된 규정과 절차로 인하여 일 추진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
공공사업용 재산을 매입하자면, 의회로부터 공유재산 취득승인과 소요예산을 의결 받아야하는데, 그 절차와 소요 시일, 사안별 예산계상 등은 융통성 있는 집행을 어렵게 하고, 결국 사업추진 지연으로 민원을 해소하기 어렵다.
일처리에 있어서 관리자의 책임지는 자세와 판단력이 돋보인 사례가 있다.
오래 전, 어느 도지사는 결재서류에 '감사관 귀하. 본 건은 본인이 지시하여 처리한 것이고, 책임은 모두 본인에게 있으니 실무자에게는 책임을 묻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쓴 메모지를 붙여 둔 일이 있다고 한다.
어느 군수는, 아파트 준공기일은 되었으나 미처 완공되지 못한 상태에서, 입주예정자들이 길에서 기다려야 할 처지에 있게 되자 임시사용허가 서류에 혼자 결재하여 처리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이런 관리자가 있다면 서류만 만지작거리는 실무자가 있을까?
공무를 수행하거나 민원을 처리하는데 규정과 절차의 준수가 특히 강조되는 것은,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한편, 공무원의 양심과 행위를 불신하는데도 있다.
따라서 절차를 간소화하고 과감하게 재량권을 주어 적극적, 합리적으로 일을 하도록 하되, 만약 이래도 소극적이거나, 고의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다면, '안 된다'는 말이나 '절차 타령'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공무원 스스로 '영혼'과 '존재 이유'를 늘 가슴에 담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자세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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