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의 번개를 누군가 훔쳐 가고, 누명을 뒤집어쓴 퍼시 잭슨은 자신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퍼시는 친구인 켄타우로스 그로버, 여신 아테네의 딸 아나베스와 함께 번개를 행방을 찾기 위해 지옥의 신 하데스를 찾으러 길을 떠난다.
지난달 29일 신화의 본고장 그리스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진행된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의 프리미어를 지켜본 특파원들은 “의외”라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스 신화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의 영화가 아니더라, 어른들이 봐도 충분히 즐거운 영화라는 거다. ‘퍼시 잭슨…’은 자녀와 함께 보면 좋을 영화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갈등은 없지만 다양한 공간을 오가며 벌이는 주인공 소년 소녀의 모험은 꽤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설정부터가 꽤 흥미롭다. 제우스가 사는 올림포스 신전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이고, 메두사는 시골에서 빈티지 가구를 판다. 신들이 인간과 관계를 맺어 태어난 아이들, 이른바 ‘데미갓(Demi-God)’이 수천 명이나 되며 그들은 우리 곁, 아니면 강가의 캠프에서 구식 군사훈련을 받으며 살고 있다.
주인공 퍼시 잭슨은 평범한 고등학생이지만 실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영화는 틴에이저 포세이돈이 펼치는 모험담이다.
퍼시가 도둑맞은 ‘제우스의 번개’를 되찾고 신들의 전쟁을 막는 과정은 신화 속 데미갓들의 이야기를 빌려와 변주한다. 메두사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핸드폰 액정화면을 보면서 메두사의 위치를 파악하는 장면은 신화에서 페르세우스가 잘 닦인 방패로 메두사에게 접근하는 방식을 모방한 것. 또 퍼시가 어머니를 구하려고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대목은 오르페우스 신화를 변주한 것이다. 신화 속 괴물들과 싸우는 장면은 또 한 명의 데미갓인 헤라클레스를 연상시킨다.
성인 관객이라면 성인 조역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데미갓들을 지도하는 멘토 역은 5대 제임스 본드 피어스 브로스넌. 말의 몸을 한 브로스넌이라니. 지옥의 신 하데스는 스티브 쿠건이, 하데스 몰래 바람을 피우는 걸 낙으로 살아가는 부인 페르세포네는 로자리오 도슨이 맡아 포복절도할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우마 서먼이 메두사로 등장하고, 숀 빈이나 케빈 메카드 같은 배우들은 점잔을 떨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 신전에 앉아 진지하게 회의를 한다.
신나고 즐겁다. 그리스 신화를 잘 아는 자녀와 함께라면 더욱 흥미로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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