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희 대전둔천초 교장 |
어린 날, 어머니는 옥양목으로 내 이부자리를 만들어 주셨다. 그런데 그 천의 관리가 어린 내가 봐도 조금 복잡하다 싶을 만큼 성가신 것이었다. 옥양목은 흰 천이기 때문에 빨래판에 문질러 잘 빨아야 한다. 다음은 무명주머니에 밥을 넣고 오래 주물러 나오는 묽은 풀로 천을 잘 뒤적여서 '풀 먹이기' 작업을 한다. 풀을 먹인 천은 햇볕에 잘 펴서 말리는데, 이 때 조심할 것은 조금 덜 말랐다 싶을 때 걷어야 구김살을 쉽게 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손으로 만져보고 적당할 때 천을 걷어 발로 꼭꼭 밟은 후에 다시 방망이질로 결을 다듬어 숯불 좋은 다리미로 다리곤 하셨다.
이렇게 완성된 천위에 이불을 얹어 꿰맬 때 어머니는 항상 노래를 즐겨 부르셨다. 송창(책을 읽을 때 리듬을 넣어 소리 나게 읽는 것)을 외거나, 사설이나 시조를 읊기도 하셨고, 민요나 가요도 곧잘 부르셨다. 또 하나 독특한 것은 어머니는 이부자리가 완성되면 나를 꼭 그 자리에 누워보라고 하셨다. 그러면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방금 풀 먹인 천에서 나는 바스락거림을 들으면서 기분 좋은 오수에 빠져들고는 했다. 어머니는 내가 상급학교에 진학했을 때나 선생님이 됐을 때도 이렇게 이불호청을 갈아주셨다. 그러니까 그것은 어머니가 내게 준 칭찬의 하나였던 것 같다. 자식사랑으로 퐁퐁 솟아나는 엔도르핀이 있었기에 그 성가신 일도 노래를 부르면서 즐겁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와 딸을 두고 신이 내린 소울 메이트(soulmate)라고 했던가. 어머니는 나를 옥양목으로 감싸 안아 오늘의 나를 만드셨다고 새삼 긍정해 본다. 이렇게 운명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관계로 예나 지금이나 모성을 우선할 사랑은 없다고 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주로 뒤에서 조용히 응원하는 사랑이었다면, 요즘 어머니들은 앞에서 선언적 외침을 높이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커지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그 근원적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에 대해서도 그만큼 다급해진 것이리라.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아이들'이란 사실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선택권은 그들에게 주어야 할 것이다. 비록 그 선택이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아이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란 믿음으로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다. 선택으로 길러지는 창의적인 경험은 미래형 인재 육성에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그러나 따르는 것에만 익숙한 아이는 모방을 주로 하기 때문에 그만큼 성장이 더딜 것이다.
경인년 새해에도 교육에 대한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지속적이고 일관된 교육정책에 대한 열망이 글로벌 교육이란 과제와 맞물려 과도기를 넘어서는 파도 또한 가파르다. 교육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 누구보다 안쓰러운 것이 우리 아이들이다. 새해에는 건전하고 현명한 모성이 많이 생성되어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이 되돌아 볼 때 아름답고 따뜻한 추억 몇 개쯤은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산소가 되고 휴식이 되는 그런 질 좋은 추억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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