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옥양목에 품은 母情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윤희]옥양목에 품은 母情

[교육단상]김윤희 대전둔천초 교장

  • 승인 2010-02-09 14:38
  • 신문게재 2010-02-10 20면
  • 김윤희 대전둔천초 교장김윤희 대전둔천초 교장
옥양목.

▲ 김윤희 대전둔천초 교장
▲ 김윤희 대전둔천초 교장
이 낱말을 만나면 방금 풀먹인 천에서 나는 바스락거림이 들리는 것 같다. 파르스름하도록 흰 빛깔에는 내 어린 날의 휴식과 어머니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어서 유년을 향한 귀소본능을 일깨우기도 한다. 옥양목은 포플린, 당목 같은 천의 한 갈래인데 사전에는 '빛이 썩 희고 얇은 무명의 한 가지'라고 풀이되어 있다.

어린 날, 어머니는 옥양목으로 내 이부자리를 만들어 주셨다. 그런데 그 천의 관리가 어린 내가 봐도 조금 복잡하다 싶을 만큼 성가신 것이었다. 옥양목은 흰 천이기 때문에 빨래판에 문질러 잘 빨아야 한다. 다음은 무명주머니에 밥을 넣고 오래 주물러 나오는 묽은 풀로 천을 잘 뒤적여서 '풀 먹이기' 작업을 한다. 풀을 먹인 천은 햇볕에 잘 펴서 말리는데, 이 때 조심할 것은 조금 덜 말랐다 싶을 때 걷어야 구김살을 쉽게 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손으로 만져보고 적당할 때 천을 걷어 발로 꼭꼭 밟은 후에 다시 방망이질로 결을 다듬어 숯불 좋은 다리미로 다리곤 하셨다.

이렇게 완성된 천위에 이불을 얹어 꿰맬 때 어머니는 항상 노래를 즐겨 부르셨다. 송창(책을 읽을 때 리듬을 넣어 소리 나게 읽는 것)을 외거나, 사설이나 시조를 읊기도 하셨고, 민요나 가요도 곧잘 부르셨다. 또 하나 독특한 것은 어머니는 이부자리가 완성되면 나를 꼭 그 자리에 누워보라고 하셨다. 그러면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방금 풀 먹인 천에서 나는 바스락거림을 들으면서 기분 좋은 오수에 빠져들고는 했다. 어머니는 내가 상급학교에 진학했을 때나 선생님이 됐을 때도 이렇게 이불호청을 갈아주셨다. 그러니까 그것은 어머니가 내게 준 칭찬의 하나였던 것 같다. 자식사랑으로 퐁퐁 솟아나는 엔도르핀이 있었기에 그 성가신 일도 노래를 부르면서 즐겁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와 딸을 두고 신이 내린 소울 메이트(soulmate)라고 했던가. 어머니는 나를 옥양목으로 감싸 안아 오늘의 나를 만드셨다고 새삼 긍정해 본다. 이렇게 운명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관계로 예나 지금이나 모성을 우선할 사랑은 없다고 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주로 뒤에서 조용히 응원하는 사랑이었다면, 요즘 어머니들은 앞에서 선언적 외침을 높이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커지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그 근원적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에 대해서도 그만큼 다급해진 것이리라.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아이들'이란 사실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선택권은 그들에게 주어야 할 것이다. 비록 그 선택이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아이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란 믿음으로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다. 선택으로 길러지는 창의적인 경험은 미래형 인재 육성에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그러나 따르는 것에만 익숙한 아이는 모방을 주로 하기 때문에 그만큼 성장이 더딜 것이다.

경인년 새해에도 교육에 대한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지속적이고 일관된 교육정책에 대한 열망이 글로벌 교육이란 과제와 맞물려 과도기를 넘어서는 파도 또한 가파르다. 교육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 누구보다 안쓰러운 것이 우리 아이들이다. 새해에는 건전하고 현명한 모성이 많이 생성되어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이 되돌아 볼 때 아름답고 따뜻한 추억 몇 개쯤은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산소가 되고 휴식이 되는 그런 질 좋은 추억이었으면 좋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2.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4.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5.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1.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2.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3.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4.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5.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