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형제]두 남자의 아슬아슬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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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형제]두 남자의 아슬아슬한 동거

■ 의형제 감독: 장훈. 출연: 송강호, 강동원, 박혁권, 전국환.

  • 승인 2010-02-04 18:05
  • 신문게재 2010-02-05 12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줄거리>
아파트 단지에 울린 몇 발의 총성. 이 사건으로 두 남자의 운명이 바뀐다. 국정원 요원 한규는 작전 실패를 이유로 파면당하고 남파공작원 지원은 배신자로 낙인찍혀 북에서 버림받는다. 6년 뒤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 서로의 신분을 속이고 지원은 도망간 동남아 신부들을 찾아주는 한규의 흥신소 일을 돕는다.


아주 썩 괜찮은 영화가 나왔다. ‘의형제’는 무엇보다 재미있다. 전직 국가정보원 요원과 남파공작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스파이’ 영화이면서 한국사회가 당면한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사회파 영화, 그럼에도 시종 유머가 넘치며 극적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이만큼 발랄한 호흡으로 한국사회의 황량한 이면을 포착한 솜씨는 근작 가운데 보기 드문 수확이다.

‘의형제’에게 쏠리는 관객들의 관심 포인트는 아마도 한 지점일 것 같다. 송강호와 강동원의 만남. 풍성한 연기의 결을 지닌 연기파 배우와 조막만한 얼굴에 날카로운 콧날을 가진 꽃미남 배우. 두 배우의 연기 조합이 과연 어떨까 하는 거다.

두 배우의 연기 궁합은 훌륭하다. 극과 극의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자신의 연기는 조금 비우고 상대의 빈곳을 채워주는 둘의 앙상블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든다. 송강호가 폭발하고 내지른다면 강동원은 자기 것을 드러내기보다 남의 것에 반응하는 쪽이다. 송강호가 액션과 코미디, 누아르와 드라마로 영화의 너름새를 넓혀간다면 강동원은 캐릭터 속으로 집요하게 파고 또 파고 들어가 영화에 깊이를 부여한다. 송강호가 웃음을 이끈다면 강동원은 기어코 관객들의 눈에서 눈물을 뽑아낸다.

강동원의 흔들리는 내면 연기는 관객에게 성큼 다가선다. 미묘한 감정 표현과 눈빛 연기는 어디에도 발 디딜 곳 없는 남파공작원의 안타깝게 부유하는 마음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강동원, 사람 됐네”라는 관람평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영화는 이야기를 한 번 더 꼬거나 에둘러 가지 않는다. 시작부터 두 캐릭터를 빠르게 교차편집하면서 소개한다. 두 인물 모두 전화 통화를 통해 처음 등장하고, 전화를 서둘러 끊은 뒤 암호를 파악하는 작업을 하며, 현장에서 잠깐 마주친 뒤 6년 후 국가로부터 버려지고 가족과 이별한 채로 재회한다. 그리곤 한규와 지원, 이 두 남자가 의형제가 되어가는 정점을 향해 선이 굵은 드라마로 힘 있게 달려간다.

주요 배경은 남북정상회담과 북한의 핵실험이지만 정치적인 맥락 자체는 최대한 탈색시킨다. 남과 북으로 만난 두 남자가 하는 일은 도망친 동남아 신부를 찾아주는 일. 이 과정에서 이주노동자 문제와 자본주의 기승 등 우리 사회의 황량한 풍경을 드러낸다. 남과 북의 대립,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다루지만 흥미진진한 드라마와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이를 포장했기에 전반적인 톤은 무겁지 않다. 자칫 무겁고 딱딱하게 보일 수 있는 이야기들은 시의 적절하게 터지는 코믹한 장면들로 인해 물과 기름이 섞이듯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영화가 차가우면서도 웃기고, 따뜻한 이유다.

공허한 입씨름이나 의미 없는 몸 개그로 쉽게 웃기려 들지 않고, 인물들의 단면 때론 아픔까지 드러내는 대사와 설정들은 재미와 동시에 영화의 결에 윤기를 더한다.

아쉬운 점도 물론 있다. 클라이맥스가 좀 약한 편이다. 한규와 지원의 감정 변화를 결정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장면임에도 힘이 빠진다. 두 남자의 심리변화가 너무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거다. 음악으로 더하는 센티멘털리즘 역시 대중영화라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득보단 실이 많아 보인다. 한규와 지원의 사연이 가진 묵직함을 덜어낼 정도로 가볍게 느껴지는 거다.

하지만 ‘의형제’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영화다. 장훈 감독은 ‘투 톱 영화’라는 장르에 능숙하다. 서스펜스와 유머, 그리고 드라마를 솜씨 좋게 다뤄 시종 흥미롭다. 액션도 좋다. 영화 초반 남가좌동 주택가 좁은 골목 사이에서 벌어지는 추격신은 한국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이다. 무엇보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은 호흡을 보여준 두 배우를 보는 재미가 있다. 대중영화로서 흠잡을 데 없는, 2010년 벽두에 느닷없이 등장한 기분 좋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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