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완하 시인·한남대 교수 |
1층 현관으로 들어서자 벽에는 여러 개의 중국풍 마스크가 걸려 있다. 그곳에는 도깨비탈도 있고 난간에 작은 불상이 얹혀 있다. 또한 층계 앙 옆에 놓인 도자기 코끼리 상도 중국풍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어져 2층의 옷장에는 그가 입던 중국 전통 옷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그에게 중국의 영향은 대단했다.
안쪽으로 따라가니 응접실과 그 옆에 작은 방이 하나 더 있다. 그곳은 밖이 환히 내다보이고 벽에는 생전의 오닐과 가족들 사진이 걸려 있다. 그 한쪽엔 그가 피아노를 치며 웃는 사진이 있다. 안내원은 그 사진이 오닐이 웃으며 찍은 몇 장 안 되는 사진의 하나라 강조한다. 바로 그 아래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안내원이 카세트의 버튼을 누르자 오닐이 생전에 치던 피아노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운다. 그의 피아노 실력은 수준급이다. 작가의 사진과 그가 치던 피아노, 그때의 연주 소리가 어울려 필자에게 키 큰 안내원이 바로 오닐이 되어 서있는 착각을 일으킨다.
2층으로 올라가 유진 오닐의 침실을 지나 집필실로 갔다. 그곳에는 두 개의 책상이 등을 돌리고 있다. 오닐은 바다를 대단히 좋아한 까닭에 그의 집필실 천장이나 벽은 배안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북쪽을 향해 놓인 책상 앞의 책꽂이에는 책들이 꽂혀 있어, 오닐은 이곳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연필로 초고를 작성했다. 이어서 남쪽에 놓인 책상에서 퇴고하고 완성시킨 다음 바로 옆의 작은 베란다 형식의 방에서 타이프로 쳤다. 그가 쓴 원고를 복사해서 코팅한 자료를 살피는 동안 안내원이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극의 배경음이 깔리며 오닐이 자신의 작품 속 주인공으로 우리를 연극 속으로 불러들인다. 그가 머물던 공간은 하나하나 뜯어보니 모두 연극의 무대처럼, 그가 놓아둔 물건들 하나도 소품처럼 잠시 후에 등장할 인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마침 걷히기 시작한 안개로 가까운 정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담장을 따라 산책로를 내려가니 파란 풀밭이 펼쳐지고, 가깝게 작은 호수도 있어 한결 분위기가 편안하다. 주변에 둘러선 나무에서 온갖 새소리들이 감미롭게 쏟아진다. 마치 곳곳마다 무대장치를 마치고 이제 곧 막이 오르기 직전의 설렘으로 한껏 긴장하고 고무되어 있는 분위기다. 그 순간, 오닐이 껄껄껄 웃으며 그의 콧수염을 훔치며 쓰윽 나타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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