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영진 중도일보 전 주필 |
하지만 세태는 인문(人文)보다 경제와 과학의 '메커니즘 앞에 주눅이 들어 비틀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바람에 철학과 문학은 한걸음 밀려나 빛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폭발하는 지식과 범람하는 출판물 앞에 생활인들은 시련을 겪고 있다.
그래서 존 세필드라는 사람은 '독서는 호머 한 권으로 족하다'고 했고 스미스라는 인물은 '베스트셀러란 평범한 재능으로 조각한 묘비(墓碑)에 불과하다'고 내뱉었다. 그리고 독서를 할 때 정독이냐, '남독'이냐는 방법론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남독'은 시간 절약이라는 이점은 있으나 대충 챙길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드러낸다. 그러니 정독을 권장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단면이나 토막지식은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도 일찍이 이런 경구가 있어 왔다.
'The little Knowledge dangerous thing'이라고. 그러면 우리 출판계는 어떻고 독자 성향은 뭐라 설명해야 하는가? 온갖 출판물의 홍수를 이루어 신문 잡지는 이제 공해(公害) 취급을 받고 있다. 그리고 서점과 도서관은 중·고교 학생들과 시험 준비생 일색으로 일반 시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학 풍토만 봐도 그렇다. 수없이 많은 시집과 잡지가 나오지만 책방은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그러니 읽지도 팔리지도 않는 우리의 풍토다. 이것은 분명 병폐가 아닐 수 없다. 독자보다 문인이 많은 세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고리타분한 향수타령에 '영탄조'라면 독자는 식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 시의 해삽성(解澁性) 때문에 독자는 무시된 채 시인 상호간의 '통신부호'요, '암호'에 불과하다는 소리가 무성하다. 이 또한 비극이다. '독서는 국력'이라는 말처럼 선진국으로 갈수록 독서율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민의 독서율은 어느 수준인가를 생각해본다.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이라 한다면 독서율은 이에 맞먹는가. 세계의 독서율 1위는 일본, 2위 프랑스, 3위 독일, 4위 미국이라는 통계가 있다.
일인들은 비행기, 열차, 버스, 선박, 공원에서도 짬만 나면 손에 책을 든다. 손가방엔 일상 책을 넣고 다닌다. 공원 입구에서 냉차를 파는 노파도 손님이 뜸할 땐 소설책을 손에 든다. 술집 아가씨도 '기쿠지캉'의 연애소설 '아쿠타가와'의 작품 나츠메 소오세키를 들먹인다.
'잇사'와 '바쇼'의 하이쿠 한두 편을 줄줄이 읊어댄다. 그 바람에 일본의 출판업계는 호황가도를 달린다. 해묵은 이야기다. 지난 1973년 중도일보에 필자는 '요시가와(吉川英治)'의 소설 삼국지를 번역, 연재한 일이 있다. 도중에 신문사 통폐합으로 중단됐지만….
그때 삼국지 원본이 45중판인 것을 보고 놀랐다. 한국에선 3~4판만 내도 대박이 터졌다고 외친다. 베스트셀러 하면 김홍신의 인간시장이 100만부가 팔렸다. 하지만 독서왕국 일본에서 45중판이라면 수천만부가 나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일본의 작가 중에는 재벌급 납세자가 들어 있다. 그쯤 되면 귀족이다. 죄와 벌의 소설로 유명한 도스토옙스키가 애인의 반지를 도박판에 던진 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리 한국의 출판문화와 문인들의 처우는 언제쯤 정착될 것인가. 수수(愁愁)로워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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