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가재 잡고 길을 물어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안과밖]가재 잡고 길을 물어

  • 승인 2010-02-03 14:18
  • 신문게재 2010-02-04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화장대는 남서쪽, 그 옆에 황금색 액자 그림. 금전운이란다. 여음이 꽤나 은은한, 축소된 에밀레종은 가내 화평을 위해서이고. 옛집에 있던 이어도(鯉魚圖)가 있으면 좋겠단다. 설마 용문을 거슬러 오른 잉어가 용으로 화한다는 '등용문(登龍門) 생각에…? 가족의 입신을 바라는 순정한 마음으로 새기겠다.


종교 아니면 미신이라 치부하던 사람의 변화를 알기에 과학을 되게 따지던 사람까지 비과학성을 띨 수밖에. 문고리는 황금색으로, 금빛 감도는 열대어도 분양받았다. 일생 추워도 향기 안 판다는 매화도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연초에 논설위원실을 옮기는 9년차의 수평이동 끝에 우연찮게 만난 것이 벽에 걸린 가재 그림이었다. 비딱비딱 옆걸음하는 게와 뒷걸음치는 가재의 진척 없음, 저 한심한 갑각류. 한시를 푸니 자화상 같아 '아니올시다'이다. '돌을 등에 업고 모래를 뚫고 스스로 집을 지어/ 푸른 산 한 줄기 찬 샘 속에 살지언정/ 강호의 만 리 파도를 원치 않는다.' 댓바람에 못을 빼려다 괜스럽게 이 시가 눈에 밟힌다.

이상은 그림보다 시 때문에 빛 낡은 액자가 수명을 늘린 경위서다. 책으로 치면 W. H. 베일리의 『액자보다 그림이 좋다』보다 그림보다 액자가 좋다』가 더 좋은 모양새랄까. 액자에서 마음과 상상력을 들여다보는 창을 발견해서는 아니다. 그리고 이쯤에서, 꿇어앉아 글 읽는 학자를 '궤(?)'라고 풍자하던 것에 공감한다. '궤'는 게의 발을 가르켜 동물에 비긴 의수화(擬獸化)이기도 하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란 말이 있다. 말 되지 않음, 어이없음. 진짜 뜻은 언어에 의존하면 절대의 진리를 십분 드러낼 수 없음이다. 그런 헤맴이 꼭 싫지는 않다. 게으름의 전당, '齋堂'(나재당) 서재 편액이 그래서 마음에 닿았으리라. 세상사 술 밖에 있으니 술도 안 마시고, 신선이 내 안에 있어 바람 쐬고 달 볼 일 없다…. 사실은 정반대다. 유유자적할 수가 없었다.

어제는 또 하나의 액자와 맞닥뜨렸다. 칼국수집에 서각되어 걸린 '侖庭'(윤정) 두 글자다. 용헌 이윤용 글씨다. 둥글둥글한 정원? 생각의 뜰? 주인 이름이라 한다. '오시리스'가 계단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 '아라비아'가 침묵 속을 걷는 사람이듯, 이름이 깊다. 공주 공산성 영은사 현판을 쓴 일강(一江) 전병택의 내 이름 작품에 손발이 오그라들어봐서인지 살뜰한 그 자부심이 부럽다. 개인의 바람은 이름이 고평가되지도 저평가되지도 않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통 이상 '생산적'이라 간주한다.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의 눈이 아니어도 90% 이상은 그렇다. 내가 평균보다 우월하다는 소위 '워비곤 호수 효과' 때문에 더하다. 남 앞에서의 승진 탈락 불평, 복권 벼락에 대한 불만은 불리한 진술이다. 남들도 그들 자신을 그리 생각하니까.

긍정심은 좋다. 남들은 버린 밥으로 잉어를 낚는데, 누군들 푸덕푸덕 꼬리치는 잉어를 낚기 싫을까. 긍정심의 최대 해악은 “난 일등!”을 외친다고 일등이 안 된다는 점. 의식이 무의식 속 이미지나 신념과 불합치할 때, 동기부여는 좌절을 부풀린다.

가재는 앞으로도 가고, 게도 레코드판에서 뺑뺑이하다 놓으면 평형감각을 잃은 채 전진한다. 가재걸음이 전진처럼 보이는 고 마이클 잭슨의 월면보행(문워크) 재주가 없을 바엔 발전 없는 게걸음, 퇴보인 가재걸음은 삼갈 일이다. 뒷날 제자리걸음일지라도 지금 걸음이 앞을 향한다는 자세가 대단히 중요하다./최충식 논설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