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으로 방학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라는 내 말에 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만큼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학이었으리라. 학교에서의 생활이 그들의 생활을 틀 속에 가두어 힘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방학은 학생들의 환호성만큼 나 역시도 기다리고 있었다.
▲ 김덕원 천안성성중 교사 |
하지만 책상의 달력에는 1월 일정표가 내 마음을 비웃듯 맞이한다. 1월 새해 부터 시작된 2주간의 연수와 근무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애써 외면하며 ‘그래도 방학이다’를 외치며 힘을 불어 넣어 보았다.
이런 내 앞에 “선생님 안녕하세요?” 힘찬 목소리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자세히 보니 은석이와 만철이다. 졸업 후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나는 시험 기간이나 소풍 때면 가끔씩 찾아와 학교와 친구 얘기로 고등학교 생활을 들려주곤 하던 학생들이다. 지금은 둘도 없는 단짝 친구로 어느새 고등학교 졸업반이지만 3년 전만 하더라도 둘은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사이였다. 그런 그들이 이렇게 단짝이 된 것은 그날 이후로 기억된다.
3년 전 나는 3학년 부장이었다. 점심시간에 교내를 순찰하던 어느 날 탈의실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다른 학생들이 싸움을 즐기고 있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말리고 보니 은석이와 만철이였다. 평소 둘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과 낮은 성적으로 다른 학생들로부터 놀림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친구 하나 없이 외톨이로 지내던 학생들끼리의 싸움은 당황스러웠고, 한 동안 이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학교 축제가 다가왔고, 축제 무대에 학년별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올려 보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여러 번에 걸친 학년 회의에서 3학년은 학급별 난타 경연대회를 하고 우수팀을 학년 대표로 학교 축제 무대에 올리자고 결정하였다. 나는 곧바로 은석이와 만철이를 생각했고 이들을 불러다가 그들 학급의 난타팀에 넣어 연습하게 하면서 꾸준히 관찰하였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더니 난타를 연습하는 한 달 가까운 시간 속에서 둘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가르쳐 주기까지 하였다.
비록 그들 학급은 예선 탈락으로 결선 무대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그 후 그들은 단짝이 되어 열심히 생활하였고, 같은 전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오늘도 키가 나보다 한 뼘은 더 큰 녀석들이 재잘대는 소리를 듣는다. 은석이는 경기도 평택의 P대학 자동차학과에 합격하였고, 졸업 후에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카센타를 이어 받을 것이라는 꿈에 부푼 이야기를 한다. 만철이는 전라도의 H대학 자동차학과에 진학하였다는 얘기와 겨울 방학 동안 자동차 면허도 따고, 대학에 가서 더 깊이 있는 내용을 공부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전에 없었던 밝은 표정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각자 앞으로의 인생 설계를 하며 똑같은 자동차학과에 진학하는 제자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자신의 꿈을 야무지게 키워가고 우정을 쌓아온 그 모습 그 마음으로 그들의 따스한 삶이 영글어 가기를 빌어본다.
1년을 마무리하는 길목에서 뜻하지 않게 방문한 제자들을 통하여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얻은 하루. 관심 있는 보살핌을 계기로 조금씩 성숙해 가는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 그런 제자들의 모습이 우리의 지친 몸과 마음을 활기차게 일으켜 세운다는 것. 이런 것이 교사의 삶이리라. 참으로 보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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