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성 언론중재위원회 대전사무소장 |
공교롭게도 올해는 대내외적으로 동계올림픽, 월드컵, 전국동시지방선거라는 4년 주기의 굵직굵직한 행사가 몰려있어 이러한 예보는 가상이 아니라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현실임을 짐작케 한다.
그런데 이 '열광의 도가니' 바이러스는 양성뿐만 아니라 악성 종양을 키우고 있어 기대반 걱정반이다. 밴쿠버동계올림픽, 남아공월드컵이 국민들의 자발적 응집과 단합을 가능하게 하는 양성행사라면, 전국지방선거는 국론분열은 기본이고 금권(金權), 학연(學緣), 지연(地緣)이란 부정적인 어휘연상이 당연시되는 악성행사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선거가 월드컵보다 먼저 실시돼 거국적 선거후유증 앓이 기간이 짧을 것이라는 점이다.
선거든 대형스포츠 행사든 우리는 늘 그와 맞물려있는 언론의 역할과 책임에 주목하게 된다. 언론에 의지하여 현상 대부분을 판단하고 취사선택하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판단력이 떨어진 사회 주체들이 너나없이 담론(談論)의 늪 속으로 뛰어들 때 언론은 한발 물러나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현상을 바라보고 판단해 사회가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가 있다.
하지만 과거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면 제일 먼저 준동(蠢動)하는 것이 언론이었다. 특히 선거철만 되면 되살아나는 '사이비 또는 유사 언론'의 병폐는 언론의 신뢰에도 치명적이어서 진흙탕 선거를 부추기는데 한몫 톡톡히 거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곤 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지역언론에서 많이 목격되며, 유명무실(有名無實)한 언론들이 선거 취재를 빌미로 발품을 열심히 파는 것도 이즈음이다.
2008년에 있었던 18대 국회의원선거기사심의 결과는 지역언론의 병폐가 어느 정도인지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당시 언론중재위원회 선거기사심의위원회는 전국에서 발간된 398개 신문, 잡지 매체를 심의, 모두 45건의 경고문 게재 결정, 38건의 경고결정, 7건의 주의결정을 내렸다. 경고문을 게재한 45건의 매체를 살펴보면 중앙일간지는 단 한건에 불과하며, 지역일간지 12건, 지역주간지 15건으로 지역언론의 선거법 위반이 전체 경고건의 60%를 차지했다. 위반유형별로는 특정후보를 편들거나 비방하여 공정성 및 형평성을 위반한 기사가 37건으로 월등히 많았으며 외부기고 규정을 어긴 기사가 4건, 그리고 여론조사보도요건을 지키지 못한 기사 3건 등이었다.
공정하고 공평한 사시(社是)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파수꾼으로 역할하고 있는 지극히 양성의 언론들조차도 선거철만 되면 돌연 이전구투(泥田狗鬪)에 합세하는 병폐가 올해도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벌써부터 생기는 것은 지나친 기우(杞憂)일까?
'세종시'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복병을 만나 여론이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대전충남지역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선거가 예상되며 특히 언론을 통한 선전전, 홍보전은 매우 치열할 전망이다.
정치인들은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밀어(密語)를 속삭일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언론은 정치인이 내뱉는 말이 공언(空言)인지, 수작(酬酌)인지, 진정성이 담보된 약속(約束)인지 걸러내어야 한다. 언론이 '밀어'에 눈멀지 않고 '공약(空約)'을 자정하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국민들은 악성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따라 2월 1일자로 전국동시지방선거 선거기사심의위원회가 설치돼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시도지사, 교육감을 비롯해 시도의원, 기초의원 등을 선출하게 될 이번 선거 때는 과거처럼 민망하게 낯 뜨거운 공언을 일삼는 후보가 나와서는 안되겠지만 이들에 영합해서 앵무새처럼 악성바이러스를 유포하는 언론의 준동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연초 열광의 도가니 바이러스 영향으로 일년내내 전국이 뜨겁고 치열할 것으로 예보했으나 예상과 달리 매우 차분하고 평온한 가운데 경인년(庚寅年)이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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