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을 눈앞에 두고도 소장품 구입 예산이 부족해서, 혹은 현대미술에 대해 보수적이었던 이사진의 반대에 부딪쳐 다른 미술관이나 개인 소장가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보았을 때의 안타까움이 그녀의 회고록 여기저기에서 짙게 묻어난다.
특히 윌렘 드 쿠닝의 수작을 추천했으나, 보수적인 이사진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수집하지 못한 일은 미술관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속 쓰린 일로 남아있다고 한다. 우수한 소장품으로 ‘컬렉션’을 만드는 일은 큐레이터의 가장 중요한 직무이자 사명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의 소장품은 보통 전문가로서 미술의 흐름과 작품의 미학적 가치를 엄정하게 연구 조사, 판단하는 큐레이터와 역시 전문가로 구성된 작품수집심의위원회 등 여러 단계를 거쳐서 비로소 그 지위를 갖게 된다. 개인이 아닌 공공의 자산, 특히 우리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까지 작품의 관리와 보관, 연구의 책임을 남기는 만큼 그 선택과 심사 과정이 여러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경우 미술관이 소장품은 구입과 기증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진행되는데, 구입의 경우 화랑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훨씬 적은 가격으로 책정되며 이를 뮤지엄 프라이스(Museum Price)라고 말한다. 미술관 소장품이 된다는 것은, 미래의 문화재, 국보로서 삼고 예술적 가치는 물론이며 교육적 가치가 있는 소중한 자산으로 영구히 보존하겠다는 준엄한 약속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미술관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은 만큼 미술관의 작품 수집에 대해 많은 오해가 존재한다. 기증의 경우,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무조건 미술관에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기증 역시 예산, 즉 시민의 세금이 집행되는 구입과 동일하게 여러 단계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메디치家와 왕가의 수백 년에 걸친 소장품을 기반으로 개관한 우피치미술관, 루브르, 프라도 미술관 등 유수의 미술관은 그 소장품을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인 뉴욕 근대미술관(MoMA)이나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미술관 등이 마그리트, 피카소, 마티스 등부터 바우하우스, 추상표현주의 등 20세기 초반 미술의 흐름을 대표하는 컬렉션을 확립하기까지는, 미술사적 지식과 안목으로 피카소를 현대미술의 시원이라 확신하고 끈기 있게 작가와 소장가, 미술관 위원회를 설득했던 관장과 큐레이터의 혜안과 노력이 있었다.
미국 최초의 대규모 <피카소>전을 개최하기 위해서 뉴욕근대미술관 장 알프레드 바르(Alfred Barr)가 작품을 미국과 유럽을 건너면서 벌였던 치열한 눈치작전도 유명하다. 어렵게 유럽출장을 내어 클로드 모네의 소장가를 찾아간 그는 예산상의 문제로 미술관이 여러 작품을 구입하지 못할 상황이 되자, 미술관 이사진에게 개인적으로 구입할 것을 권유했다. (후일 그 작품들은 뉴욕근대미술관에 기증되어 미술관의 컬렉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피카소의 작품을 구입할 때는 작품가격이 수집예산을 훌쩍 넘어서자, 작품 값을 2년간 나눠 내는 묘안도 냈다.
왜 피카소에 집착하느냐는 의심 어린 눈길에도 전문가로서, 그리고 당시로는 유럽의 수많은 미술관에 비해 후발 미술관인 뉴욕근대미술관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과감히 당대의 현대미술에 ‘선택과 집중’했던 관장 바르의 비전이 오늘날의 MoMA의 기초를 세운 것이다. 또한 미술관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었을 고가의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했던 미술관 이사진들의 실질적인 미술관 후원도 미술관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개인소장자도 드물고, 그 수집품을 공공을 위해 기증하는 문화는 더더욱 드물고, 소장품 구입 예산은 한정된 상황. 우리도 언제 캐서린 쿠와 알프레드 바르의 007작전 같은 소장품 확보 작전, 한 번 펼쳐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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