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순중 한국예총 대전시지회 사무처장 |
그렇다면 지난 수년간 시행해 온 이러한 지원 사업들은 그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는가? 문화예술 지원사업의 성과를 제시하는 전형적인 방식은 보통 지출된 지원금 액수와 그로인한 1차적 활동 결과물을 기술하는 것이다. 예컨대 수억원의 지원금이 수백명의 예술인 및 단체의 창작을 위해 투입됐다는 사실과 무슨 공연이 몇 차례 열렸고 어떤 전시회가 얼마동안 개최됐는지 등을 열거하는 식이다.
그렇지만 지원금은 사업에 투입된 비용일 뿐 산출되는 성과가 아니다. 만약 지원금을 성과로 취급한다면 투입을 산출과 동일시하는 셈이다. 이런 논리라면 어떠한 사업도 실패작이 될 수 없으며, 더 큰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이 도출된다. 지원금이 증가했다고 우리 문화예술이 증가배수 만큼 더 진흥됐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이다. 또한 1차적 결과물(예컨대 연간 연극 공연 횟수)이 증가 했다고 해서 그에 비례해 문화예술 활동이 활성화 됐으며, 시민들의 삶의 질도 증가됐다고 확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대안의 모색은 문화예술 행정의 현실, 특히 본질적 한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의 출발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지난 수년간 지원 사업으로 획득한 진정한 성과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이 말은 시가 지원한 사업의 운영계획 및 체계가 잘못 됐다는 말은 아니다. 대전시 보다 더 많은 지원금액을 가지고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 경기문화재단을 비롯한 타 재단 역시도 해당지역의 문화예술 진흥과 문화적 삶의 질이 눈에 띄게 고양됐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평가작업을 게을리 했거나 소홀히 해서라기보다는 문화예술 행정의 본질적 한계가 빚어낸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예술의 수준에 대한 질적 수준에 대해 객관적 수치로 측정·평가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로 본다면 지원심의 방식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문화예술의 속성을 감안할 때 문화재단에서 시행하고 있는 심사에 대한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해 '하지 않는다' 보다는 '하지 못한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지원금을 배부 받는 예술인·단체가 적격자였는지, 그 활동 결과물이 과연 탈락자들의 작품보다 탁월한 수준인지 등에 대한 100% 객관적인 사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과장된 표현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굳이 그렇게 심의 과정을 까다롭고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그러나 지원사업을 시행하면서 사전심사나 사후 심사를 엄격하게 하지 않는다면 분명 안이한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문화예술행정의 한계를 인정한다고 해서 이런 '도덕적 해이'와 비합리적인 자원낭비마저 용인해야 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지원금 수혜자들이 창작활동을 성실하게 수행할 것으로 일단 먼저 믿어주되, 그 신뢰를 저버린 이들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중대한 불이익 처분을 돌려주자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지금 시점에서 우리 예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문화예술 지원의 체계나 심사의 문제를 갖고 논의하기 보다는 지원자금을 더 많이 확보해 보다 많은 예술인들에게 혜택을 주는 일이 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목마른 가난한 예술가들이 더 많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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