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에 식자재를 싣고 팔러 다니는 성찬은 어릴 적 친어머니처럼 자신을 길러준 수향을 보기 위해 춘양각을 찾는다. 마침 그곳엔 수향의 딸이자 천재 요리사인 장은이 10년 만에 돌아와 있다. 장은은 춘양각을 없애려 하고, 춘양각을 지키려는 성찬은 김치 경연의 대결을 제안한다.
옛날 양가집 며느리는 서른여섯가지 김치를 담그고 서른여섯가지 간장을 담글 줄 알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개화기 의사이자 외교관이었던 미국인 알렌은 『조선견문』에 적기를 “조선 김치는 무려 140가지나 되며 다 익은 김치도 날 야채처럼 신선감이 나고 마늘을 넣지 않은 김치는 담백한 맛이 있다”고 했다.
우리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김치. 140가지나 된다는 그 많은 김치를 다 맛볼 순 없겠지만 눈으로 볼 수는 있다. 영화 ‘식객: 김치전쟁’(이하 ‘식객 2’)에서다. ‘식객 2’는 ‘김치전쟁’이란 부제답게 123가지에 달하는 김치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배추 5만 포기, 갖가지 양념을 합해 2억5000만 원을 들여 담갔다는 영화 속 김치들은 맛깔스럽다. 눈길을 잡는 김치만 꼽아 봐도 대게김치, 이북식 가자미식해, 상큼한 오이 롤 김치, 인삼을 넣은 우엉김치, 매콤한 해물 석박지, 콜라비 김치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미각을 자극하는 화려한 영상에 아삭거리는 음향효과가 겹치면 군침을 삼키지 않을 도리가 없다. 김치를 둘러싼 각종 지식도 흥미롭다.
김치 맛에 푹 빠져 잊지 쉽지만, ‘식객 2’는 음식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어머니에 대한 영화다. “맛을 느끼는 것은 혀끝이 아니라 가슴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의 어머니 숫자와 동일하다”는 원작자 허영만 화백의 말에 충실하다.
허 화백도 만화 ‘식객’에서, 해외 입양됐다가 어머니가 건네준 쌀 맛을 찾아온 미군, 어머니가 해주던 부대찌개 맛을 잊지 못하는 세계적인 석학, 어머니가 쪄주던 고구마 맛을 느끼고는 참회하는 사형수 등 어머니의 손맛에 얽힌 에피소드를 자주 등장시킨다. 어머니 이야기는 백이면 백, 우리 가슴에 잠든 어머니를 불러 깨우고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식객 2’도 그렇다. 모두 세 명의 어머니를 등장시켜 과하다 싶을 정도로 눈물샘을 자극한다.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어머니는 한순간 실수로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다니는 여상의 어머니. 여상은 어머니의 정이 담긴 맛을 잊지 못해 늦은 밤 어머니의 허름한 식당을 찾고, 어머니는 정성스레 상을 차리지만, 여상은 한 술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경찰에 붙잡힌다.
주인공 성찬의 어머니 이야기도 절절하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장애가 아들에게 해가 될까봐 눈물을 머금고 성찬을 유명한 전통음식점 춘양각의 수향에게 맡긴다.
춘양각 여주인 수향에게는 천재 요리사로 성장한 딸 장은이 있다. 장은은 기생집 딸이라고 놀림 받은 상처가 깊다. 그래서 장은은 지우고 싶은 기억의 상징인 춘양각을 없애려고 하고, 이를 지키려는 성찬과 김치 맛을 둘러싼 대결을 시작한다.
예상대로 장은은 현대적 기법을 동원한 김치를 선보여 결승에 오르고, 성찬은 토속 김치로 맞선다. 그러나 이야기의 얼개가 다소 경직되어 보인다. 비장의 에피소드도 칼칼하게 숙성된 것 같진 않다. 발효와 숙성의 다채로운 얼굴들-똑같은 김치라도 어떻게 익히느냐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지는 맛-을 더 깊이 있게 조명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감독이 맛의 기본기를 잘 아는 요리사라는 데 이의가 없다. 특히 소금 에피소드는 짭짤해서 여운이 길게 남는다. 소금은 모든 음식의 시작이자 끝.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음식에 녹아있을 뿐이다. 그게 엄마의 자식사랑 같은 거라고 감독은 말한다.
한마디로 잘 차린 한정식 같은 영화다. 하지만 상다리가 휘어진다고 해서 모든 요리가 다 맛있는 건 아니라는 걸 다들 안다. 딱 그만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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