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는 남편을 살해한 죄로 10년 형을 받은 재소자. 어느 날 필리핀 교도소의 춤추는 재소자 기사를 본 뒤, 합창단을 만들 게 해달라고 교도소장에게 청원한다. 정말 합창단이 구성된다. 마침 정혜의 방엔 한때 음대 교수였던 사형수를 비롯해 힘이 되어주는 동료들이 있다.
‘하모니’가 ‘화장지 종이심으로 머리카락을 말고 실로 수박을 자르는’ 낯선 풍경의 여자교도소를 무대로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 어머니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한 가지라도 더 들려주기 위해서다.
영화 속, 교도소에는 뱃속 아이를 위해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어머니, 아들과 딸에게 살인자의 자식이란 멍에를 지웠다는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다그치는 사형수 어머니, 살인자가 된 딸에게 미안해하며 얼굴조차 볼 수 없어도 매일 면회 오는 어머니, 생활고에 치어 사기범이 되었지만 남편과 딸들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치는 어머니 등등 갖가지 사연을 가진 어머니들이 등장한다.
영화는 어머니 각각의 사연을 들려주고 이 사연들을 모성애라는 화음으로 공명시켜 기어코 관객들의 눈물을 훔친다.
또 하나는 ‘가족 찬가’다. 영화는 어떤 죄를 저지른다 해도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 줄 사람은 바로 ‘어머니’, 그리고 ‘가족’이라는 전제에 기댄다. 극중 인물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이유가 대개 남편의 외도나 폭력이었다는 점은 ‘가족의 파괴’를, 이들이 가족에게서 입은 상처를 서로 보듬고 합창단을 구성해가는 과정은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상징한다.
이로써 영화는 보편적 감정의 지점을 확보한다. 이들이 입을 모아 부르는 노래는 결국 ‘가족 찬가’인 거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재소자들이 합창을 통해 내·외적으로 화해하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는 것. 그 나머지 빈칸을 채우는 건 오롯이 배우들의 연기다.
‘쉬리’ 이후 여전사 이미지가 강한 김윤진은 아들 민우를 지키려는 모성애를 연기한다. 그가 맡은 정혜는 임신한 채 수감돼 교도소에서 아이를 낳고, 18개월 뒤 아이를 입양 보내는 슬픈 사연의 캐릭터. 아이를 보내거나 재회하는 순간 관객들은 이건 분명 눈물의 덫이라고 직감하지만 오버와 절제를 오가는 그의 연기에 이성의 벽은 무너지고 만다.
엄마 같은 문옥 역의 나문희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으면서 슬픔을 연기하는 연륜을 보여준다. 영화 ‘해운대’에서 코믹한 캐릭터로 관객들의 웃음보를 자극했던 강예원도 이번엔 날카롭게 날을 세웠다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연기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트로트 발성으로 합창단의 물을 흐리는 밤무대 가수 출신 화자 역의 정수영,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는 프로레슬러 출신의 연실 역의 박준면 등 막강 조연의 톡톡 튀는 연기 또한 웃음과 눈물을 바가지로 실어 나른다.
이 영화가 가진 약점도 분명하다. 감동적이고 슬픈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너무 상투적이라는 거다. 이 자리엔 이것이, 저 자리엔 저것이 하나씩 합을 맞춰 들어가 줘야 한다며 만든 티가 역력하다. 웃음을 자아내는 합창단원 오디션 장면은 다른 영화에서 수없이 봐왔던 바로 그 장면이다.
눈물을 끌어내는 장면도 그렇다. 식상할 만하면 애틋한 정서를 곧바로 공수한다. 한 사람의 눈물이 모자라면, 옆의 조연들이 바가지 눈물을 보탠다. 아마 이 영화보다 ‘눈물의 하모니’를 더 극적으로 표현한 드라마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정혜와 아들 민우의 이별, 전국합창대회에서 가족들과의 만남 그리고 사형수 문옥을 통한 사형제도의 모순까지 아우르는 이 영화는 다소 억지스런 설정과 신파적인 요소의 극대화로 눈물을 자아내 긴 울림은 없지만 겨울 날, 추위를 녹여낼 따스한 대중영화로선 손색이 없다.
‘찔레꽃’ ‘세노야’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 ‘그대 있는 곳까지(Eres Tu)’ ‘솔베이지의 노래’ 등 재소자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들도 한국인의 감성을 자극하기엔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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