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난 2008년 5월 초부터 3개월여 광우병 파동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다. 그 기폭제로 작용한 것이 같은해 4월 29일 방송된 MBC의 PD수첩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간광우병의 위험성을 잘 부각시켰으나, 인간광우병이 매우 희귀한 질병이고, 지구상에서 소멸돼가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보도하지 않은 PD수첩에도 문제는 있었다. 그러나 더 근본적 원인은 광우병과 관련한 국민들의 비과학적 접근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발병하는 인간광우병이나 가축에게 발병하는 광우병은 의학계, 넓은 의미에서는 과학계의 연구 영역이다. 그러나 2008년 당시 각종 보도와 토론에서 과학자(수의학자와 의학자)들의 합리적인 목소리는 다른 목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이처럼 과학의 자리에 과학은 없고, 정치 논리와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우리 사회가 과학이 통하지 않는 사회임을 절감하였다.
60여년 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으며 문화적으로는 문맹률이 80%대에 이르는 후진국이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고, 대학 진학률이 세계 4위인 교육 대국이며, 문맹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러한 비약적 성장을 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가 교육의 힘이었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광복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해 교육을 실시해 왔다. 특히 1973년부터는 소위 '전국민의 과학화'를 부르짖으며 과학교육을 중시하기도 했다. 그 결과 1981년 이래 여러 차례 실시된 수학과 과학 과목의 국제학력비교평가에서 우리나라의 초·중·고 학생들은 늘 두 과목 모두에서 세계 최상위권이었다(81년 중· 고 제외). 이런 결과를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의 과학교육은 매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 광우병 파동 때를 돌이켜보면 매우 성공한 것처럼 나타난 그동안의 우리나라 초·중등 과학교육이 실제로는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당시 광우병 파동에 동참한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광복 이후 과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일 터인데, 이들은 광우병 문제에 비과학적 태도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당시 광우병과 관련한 많은 주장 중에서 대표적인 3가지 경우에 대해 과학적 태도를 적용한 사고 과정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인간전염력이 매우 강한 전염병이라면, 이 병은 언제부터 발병하기 시작했고 몇 명이나 발병했나? 연도별 발병자 통계는 어떤가? 어느 나라에서 가장 많이 발병했는가? 전염력이 강하다면 인간광우병 발병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둘째, 우리나라 사람은 인간광우병에 잘 걸리는 유전형을 갖고 있어서 발병 가능성이 높다면, 외국에 살고 있는 우리 교민에게는 왜 발병하지 않았을까? 특히 영국이 가장 위험 지역인데 영국에 살고 있는 교민이나 여행객 중에서 인간광우병 발병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셋째, 라면 국물, 화장품, 화장지, 생리대 등을 통해서도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 많은 나라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먹거나 사용해왔을 텐데 발병자 수가 어째서 아직도 200여명뿐일까?
각각의 경우에 대해 위와 같은 의문을 제기하고,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광우병 관련 각종 믿을만한 통계를 찾아보고, 충분한 근거 자료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과학적 사고 과정을 거쳐 '위의 주장들은 사실이 아니거나, 광우병은 발병 확률이 매우 낮아 무시해도 되는 병이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과학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주장에 접할 때 그것이 합리적 근거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늘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따라서 늘 잘못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옳고 그름의 판단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나는 과학적 태도를 적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즉, 최대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가 과학이 통하는 사회로 나아가길 소망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