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이 2004년 유료관람객 65만명으로 집계되는 <색채의 마술사-샤갈>전을 유치하여 성공한 이래, 당해에 이 전시의 순회전을 받아들인 부산시립미술관, <빈미술사박물관>전 등을 유치했고 작년 <보테로>전을 개최했던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덕수궁미술관, 2008년 <루벤스>전을 유치한 광주시립미술관, 특히 부실한 내용으로 무수한 비판을 받았던<렘브란트와 동시대 화가들> 을 비롯한 기획사 전시들을 개최한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을 비롯하여,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전> 등을 개최한 국립중앙박물관마저도, 대부분의 전국 국공립미술관들이 블록버스터전을 유치하는데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또한 이 모든 블록버스터 전시들이 미술관 자체 기획이 아닌 외부 기획사의 기획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다소 민망한 비교이지만 2006년 대전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루오>전은 학예연구사들이 루오 파운데이션과 직접 접촉하고, 퐁피두미술관 등의 소장처에서 작품을 대여한 자체기획전이다)
세계 어느 곳이나 미술관에 가면 큐레이터(curator)들이 있어서 미술관 소장품을 연구하고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에도 학예연구사(學藝硏究士)라고 번역되어 불리는 큐레이터들이 있다.
정상적인 과정이라면 미술관 큐레이터들이 전시 기획의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겠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전시들 가운데 상당수는 일명 ‘기획사’들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미술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든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든 좋은 작품을 보기만 하면 되었지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 일반적인 관객의 입장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본래 세계박물관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박물관, 미술관끼리의 작품 대여는 상호 합의 하에 대여료를 지불하지 않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공립미술관들이 이름만을 걸어놓는 ‘주최측’이고 실제의 전시는 기획사가 진행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품들에 대한 거액의 대여료를 해외 미술관에 지불하는 실정이고, 그러한 부담은 고스란히 관람객의 입장료에 포함되는 것이다.
또한 관객이 공립미술관의 공공성을 믿고 높은 입장료를 내지만 실제의 수익은 기획사에게 돌아가는 것, 그리고 실제 대관전시장의 역할 정도를 하고 있는 미술관이 시민들을 위해 대규모 전시를 자체 기획하는 것처럼 왜곡되어 비쳐질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도 상당한 문제점이다.
서양의 거장 작가들에 대한 회고전이나 지난 사조에 대한 전시들이 잘 만들어진다면, 다른 기획전들에 비해 볼거리가 많은 전시가 될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 상황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쪽으로 방향타가 향해져 있다.
이 시점에서 관객은 어떻게 해야 할까? 좀 다른 이야기지만, 존경해 마지 않는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故 김현은, 영어패권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영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와 더불어 다른 외국어들을 더 공부하여 영어가 유일한 소통언어가 되지 않게 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수익성이 있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유형의 블록버스터 전시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전시의 메카니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거장들의 작품들을 외면하는 것도 도리는 아닐 것 같다. 방법은 김현식으로, 블록버스터 전시와 더불어 다른 다양한 전시들을 시간을 들여 보는 방법, 아는 정보를 확인하고 예상된 만큼의 감동을 받으러 가는 관람이 아니라, 전혀 모르는 작가의 낯선 전시를 불쑥 찾는 성의 같은 것들이 오늘 한국의 블록버스터전시 패권주의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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