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시리즈 4] 자유·평등을 향한 예술교육 독일

[문화예술교육시리즈 4] 자유·평등을 향한 예술교육 독일

  • 승인 2010-01-14 14:08
  • 신문게재 2010-01-15 10면
  • 임연희 기자임연희 기자
1, 2차 세계대전을 겪은 독일 사람들은 더 이상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어린이와 청소년을 지금과 다르게 교육해야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1차 대전 이전 독일에서는 돈이 없으면 학교에 다닐 수 없었으며 노동자 자녀들은 초등학교 밖에 못 다니고 문화예술교육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전쟁의 폐허를 경험한 독일사람들은 계급과 계층 간 차별을 없애고 모든 학생과 어린이를 위한 평등교육을 시작했다.



빈부·성별·재능차별 없앤 발도르프 학교

빈부와 성별, 재능이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간 차별을 없앤 대표적 학교가 발도르프인데 이는 못 사는 집 아이가 부잣집 아이 옆자리에 앉은 독일 최초의 사례가 되고 있다.

1919년 담배공장 사장이었던 에밀 몰트가 사상가 루돌프 슈타이너에게 학교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자 슈타이너는 예술을 통한 인지학에 기반한 교육체계를 만들어 발도르프 학교가 탄생한다.

이러한 슈타이너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으로 900여개 이상의 발도르프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우리나라에도 과천과 부산에 발도르프 학교가 있다.

기자가 방문한 슈투트가르트 지역 발도르프학교는 536명의 학생들이 100명의 교사와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 학교 세바스티안 베르크(Sebastian Berg)홍보담당은 “모든 학생이 평등하듯 교사도 평등하기 때문에 발도르프에는 교장이 없으며 동시에 모든 교사가 곧 교장”이라며 “매주 교사들이 모여 토론하면서 학습과정 뿐 아니라 운영도 교사들의 합의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외우고 기억하기보다 ‘잊어버리기’ 가르쳐

우리나라에는 대안학교로 더 많이 알려진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점수를 매기지 않고 유급도 없으며 학생 개개인의 관점에서 재능을 관찰하고 키워준다.

이곳은 특히 암기위주의 교육과 함께 배운 내용을 반드시 기억하도록 강요하는 우리와 달리 학생들에게 배운 것을 잊어버리도록 가르친다.

이에 대해 베르크 홍보담당은 “농부가 다음해 싹을 틔우기 위해 씨를 깊게 묻는 이치와 같아 암기를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늘 현재 배우는 과정에 충실할 수 있다”면서 “1년 내내 꽃을 피우는 식물이 없듯 교사는 발달단계에 따라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주고 잠재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고 말했다.

억지로 외우고 기억하기보다 ‘잊어버리기’를 먼저 가르치는 발도르프에서는 서로 상반된 교과목을 선정해 4주씩 같은 과목을 2시간씩 연속수업하며 슈타이너가 창안한 동작예술인 ‘오이리트미(조화로운 리듬)’를 통해 인간의 정신이 육체와 결합하고 성장해 가도록 돕는다.

오이리트미는 언어와 음악을 율동을 통해 표현하는 것으로 학문간 경계를 허물고 사회적 교류도 길러주는데 이처럼 머리와 가슴, 손을 이용해 배우는 발도르프 아이들은 나무를 깎아 접시와 의자, 탁자 등을 만들 수 있으며 자신이 만든 바이올린으로 직접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재능 있는 아이가 바이올린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인내심 많은 아이가 악기를 완성한다”고 말한 베르크 씨는 “하루 1~2시간씩 나무를 다듬어 250시간 만에 바이올린 만들기에 성공한 아이는 어떤 일이든 해낼 준비가 된 아이”라고 평가했다.



자율, 사랑, 존중의 교육

우리처럼 상대평가를 통해 아이들의 점수를 매기고 비교하지 않는 발도르프 학생들은 한 가지 이상의 악기를 다룰 수 있고 마음껏 그림을 그리며 직접 연극 무대에 서보고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문화유적지를 답사하며 체험의 기회를 넓힌다.

이런 열린교육은 성인의 눈으로 발달과정에 있는 어린이를 평가하는 것은 큰 실수를 범하는 일이라는 발도르프의 철학에서 출발한 것으로 자율과 사랑, 존중을 모토로 모든 교사가 수업 또한 자율적으로 진행한다.

초등학교 1학년 과정을 둘러보니 어느 교실 신발장 앞은 마구 벗어놓은 신발들로 어수선한반면 다른 교실은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다.

우리 시각에서 보면 학교에 들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자기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며 교사가 이를 지도하지 않았다고 책망하기 쉽지만 발도르프 교사들은 아이들이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할 단계가 되지 않았으면 그냥 두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이 판단한 교육과정에 따라 지도한다.

이렇다보니 어느 학급은 3월에 자기 물건 정리를 배우고 어느 학급은 12월에 배운다. 그러나 이런 교사의 수업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부모는 없다. 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교사를 믿고 따른다.



부모 재정상태에 따라 수업료 각기 달라

학교에서 직접 악기를 만들고 마음껏 음악, 미술, 무용 등 문화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발도르프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는 월 140유로(약 23만원)로 이는 4~5인 가구의 1주일 생활비 정도다. 그러나 이는 대략 정해 놓은 수업료이지 이를 안내는 부모도 있고 더 내는 부모도 있다.

발도르프는 재정과 교육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어 교사들은 신입생을 채용할 때 아이의 관심분야와 성격만 보지 가정형편과 부모의 재정 상태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학교 전체예산의 3분의 2는 주(州)정부에서 지원하고 아이의 입학이 결정되면 학교에서 부모에게 얼마의 학비를 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 과정에서 소득이 많은 부모는 좀 더 많은 수업료를 내고 한 부모 가정 아이의 학비는 면제된다.

아이가 얼마의 수업료를 내고 학교에 다니는 지 교사들은 전혀 모르며 관심을 갖지도 않는다.

발도르프에서 만난 10학년 김정엽(16)군은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발도르프에 왔는데 “한국에서의 기억이라곤 학원에 다니며 선행학습을 하고 시험에 대비해 외우라고 강요하던 것밖에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정엽 군이 발도르프에서 느끼는 최고의 가치는 ‘자유’였으며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다양한 학습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관심 분야를 찾았다는 것이다.

정엽 군의 말처럼 학교에서 공예와 음악, 미술, 연극 등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경험한 아이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모든 가능성’에 열린 자유로운 문화예술인으로 성장한다는 게 독일 교육의 지향점이다.

자유와 평등을 향한 독일의 열린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안승문 교육희망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국가의 가장 많은 예산을 교육과 의료, 복지 등 사람에 투자하고 더 많이 가르치기보다는 개인별 학습계획을 세워 학생 스스로 공부해야하는데 우리는 이를 사교육과 부모 주머니를 통해 해결하면서 쓰레기봉투에 쓰레기를 담듯 꾸역꾸역 담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안 위원장은 또 “전쟁의 아픔을 딛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의 문제는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뜻을 세우지 않고 꿈을 꾸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손으로 배우는 삶의 기술들을 소중히 생각해야하며 교사와 학생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함으로써 학생들의 흥미와 동기를 유발할 수 있도록 떡잎에 투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끝>



/독일=임연희 기자 lyh3056@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사진설명

1. 발도르프 전경

2. 학생들이 250시간을 들여 직접 만든 바이올린이 걸려 있는 목공예실에서 세바스티안 베르크 홍보담당이 한 학생이 만든 바이올린을 들어보이고 있다.

3. 흙과 나무, 돌 등 자연 속에서 나무로 만든 그네와 시소를 타고 있는 발도르프 어린이들의 모습.

4. 수업방식을 교사 스스로 결정하는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1학년 학생들이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든, 마구 벗어 놓든 모든 교육과정을 교사가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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