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편지는 이렇게 글을 이었다. 기부금 단체 지정과 관련해 기준 등이 특별히 바뀌지 않았기에 왜 보류 판정을 받았는지 알 수 없으나 정부정책에 반대해 온 단체들에 대한 탄압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 단체는 정부가 발주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각종 위원회가 주관하는 공모 지원 사업에서는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이런 정황을 감안할 때 그런 의구심이 들만도 하겠다. 아니, 의구심이 사실이 아니고선 이처럼 황당한 경우를 설명하기 힘들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이 단체가 이명박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 온 것은 익히 알고 있다. 그렇기로서니 국가기관이 회원들의 십시일반으로 근근이 운영되는 일개 시민단체를 상대로 이렇게 압박하는 건 치졸하다. 게다가 현 정부는 지난해 말 계층과 지역, 세대, 그리고 이념까지 아우른다며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사회통합위원회를 생색내며 출범시키지 않았던가.
시민단체는 봉사나 구호부터 시민의 권익 대변과 정책 제안까지 그 관심 영역과 활동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비정부기구를 뜻하는 NGO란 말이 대변하듯, 정부 등 권력집단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이들의 감시자·비판자 구실을 마다하지 않는다.
행정·입법·사법 등 3부가 권력을 나누고, 이들을 감시하라고 언론이 제4부의 타이틀을 부여받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사회적 견제와 감시는 여전히 필요하다. 언론마저 권력화된 세상 아니던가. 시민단체는 본디 권력이 크고 강한 대상일수록 감시의 눈초리를 매섭게 세워야 하는 기구일지 언대 바로 그 이유로 정부가 이들에게 힘을 행사하는 건 '조폭'이나 하는 짓이다. 힘없고 눈엣가시 같은 이들을 절멸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차분히 생각하면, 시민단체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결점을 채워주고 자치를 꽃피우는 밑거름이다. 선거 때를 제하고 시민이 직접 국가정책에 결정권을 행사할 기회는 흔치 않다. 시민단체는 이를 일상화·전면화한다. 선거철이 아니더라도 시민의 주권 행사를 독려하며, 시민 참여를 통해 의제를 발굴한다. 그 덕분에 낭비하지 않게 된 사회적 비용이 어디 한두 푼이며, 향유하게 된 시민 편의가 비단 한두 가지던가. 국가는 되레 시민단체에 감사해야 할 입장이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 한평생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친 모리 슈워츠 교수가 루게릭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20년 만에 만난 제자에게 건넨 말이다. 가슴 벅찬 이야기들로 가득한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는 두 개의 파도가 나누는 이야기가 나온다.
앞서가는 파도가 뒤따라오는 파도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모를 거야. 우린 모두 부서진다고. 우리 파도는 부서져 다 없어져 버린단 말이야. 무서워.” 하지만 뒤따라가는 파도는 생각이 다르다. 그래서 이렇게 답한다. “너는 네가 파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서운 거야. 난 무섭지 않아. 우린 바다의 일부니까.”
시민단체와 국가기관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바다의 일부다. 하나가 죽어야 다른 하나가 사는 관계가 아니다. 그저 제 역할에 충실하면 바다는 조화롭게 넘실대는 파도들로 향연을 열 것이다.
전자우편을 보낸 단체가 기부금 영수증 발행에 연연하지 않길 바란다. 오직 권력이 힘을 남용하지 않도록 감시·비판하는 데 진력하면 된다. 그게 당신들이 국가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국가기관은 이제 그만 평지풍파만 멈추어다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