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와 청동기 시대의 암각화, 각종 민화 등에도 호랑이가 등장하고 있다. 호랑이는 잡귀들을 물리치는 신성한 영물로, 혹은 재난을 몰고 오는 난폭한 맹수로,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의리 있는 동물로, 골탕을 먹이는 순진하고 어리석은 동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처럼 호랑이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고 우리가 살아가는 국토의 지명에도 예외 없이 반영됐다. 이러한 지명을 통해 인간생활의 터전인 국토와 호랑이가 어떠한 관계를 형성해 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편집자 주>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 국토지리정보원은 호랑이의 해를 맞아 자연지명 속에 포함된 호랑이 관련 지명을 조사해 모두 389개인 것으로 조사됐다.
모양관련 지명중에는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모습을 비유한 복(伏, 엎드리다)자를 사용한 지명(복호, 호복, 복림 등)이 다수 있다. 또 한반도 전체를 호랑이로 묘사해 호랑이는 꼬리의 힘으로 달리고 꼬리로 무리를 지휘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지역이 호랑이 꼬리부분에 해당해 지명을 변경한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의 '호미곶'은 원래 '장기곶'이었던 곳으로 호랑이의 모양을 본떠서 지은 지명이다.
또 뒷산의 지형이 범이 웅크리고 있는 모양으로 마치 범이 마을을 지킨다고 해 '범직이'마을 (연기군 남면) 등 지형을 호랑이의 형태로 표현해 유래됐다.
이외 호랑이의 출현설화와 관련된 지명도 다수다. 이같이 호랑이의 모습이나 관련된 이야기는 조상의 삶과 지혜가 어우러진 지명이라는 문화재 속에 자리 잡아 내려오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 호랑이 지명이 사용된 마을=대전 유성구 신성동 우성이산은 부엉골 뒤에 있는 산으로 산에서 범 여러 마리가 우렁차게 울었다 해 우성이산이라고 부르게 됐다.
유성구 온천 2동 범의 굴은 관바우 서북쪽에 있는 굴로 옛날부터 바위모양으로 된 굴이 있어 범이 살던 굴이라 해 범의 굴이라 부르게 됐다.
진잠동 범바위는 산제당골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호랑이처럼 생겼다 해 범바위 또는 한자표기로 호암이라고 불려왔다.
신성동 호동마을은 도룡 북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이 범의 모양이며 부엉바위가 있다. 중구 석교동 호암마을은 부근에 범위 살고 있다는 전설에 의해 속칭 호암으로 불리고 있다.
부여군 세도면 귀덕리 범굴마을은 예전에 범이 살았다 해 범굴이라 한다. 부여군 남면 신홍리 내서마을은 뒷산이 범이 엎드리는 형국이라 해 범말이라 했고 내곡리의 서쪽이라 해 내서라 한다.
서천군 한산면 호암리 봄배마을은 부락에 범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범바위라 부르다 지금은 봄배라 부른다. 논산시 연산면 한전리 범남마을은 고려말 광산 김씨 선조의 비 하씨가 개성에서 이곳까지 야행으로 내려올 때 호랑이가 호위해 내려 왔다해 범남이라 칭했다.
▲가장 많이 호랑이를 닮은 지형은 어디일까= 지명의 유래로 호랑이 형상을 하는 지명에 대해 최신의 항공사진 등을 이용해 검토한 결과 대부분 호랑이의 형상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연기군 남면 고정리 범직이 마을은 호랑이의 형상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범직이 마을의 유래는 마을 뒷산의 지형이 범이 웅크리고 앉은 모양으로 마치 마을을 지키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해 범직이라고 불렸다.
옛날에는 항공촬영이 불가능했고 주변에 높은 산이 없음에도 호랑이와 닮았다고 한 것은 산의 외관을 통해 호랑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예상된다.
▲호랑이 지명의 종류별 사용실태= 호랑이해(경인년,庚寅年)를 맞아 전국의 자연지명 10만509개를 대상으로 호랑이 관련 지명을 조사한 결과, 호랑이 관련 지명은 총 389개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마을 명칭(284개, 73%)이며 다음으로 산의 명칭(47개, 12.1%), 고개명(28개, 7.2%), 바위명(10개, 2.6%) 등이다.
마을 명칭에 호랑이가 나타나서 도움을 줬다는 관련 내용이 많았고 호랑이 울음소리, 호랑이 형상과 관련된 내용도 많았다. 이는 생활 속에 호랑이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성수 기자 joseongsu@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