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
진료를 하면서도 “이렇게 치료해 올리겠습니다”, “빨리 나으셔야 할 텐데 여러 날 고생하시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하고 마치 본인이 잘못하여 아프게 했거나 치료가 더딘 것처럼 송구스러운 표정을 지으니 오히려 당황스러울 때도 없지 않다.
뛰어난 의술(醫術)이나 의사로서의 권위보다도 부드러운 표정, 인간적인 푸근함을 보이면서 환자를 대하는 모습에서 재물을 주지 않고서도 베풀 수 있는 무재칠시(無財七施)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무재칠시는 잡보장경(雜寶藏經)이라는 불경에서 이르는 말로써 돈이나 재물을 들이지 않고도 남에게 베풀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 첫째는 얼굴로 베푸는 안시(顔施)이니 상대방을 인자하고 온화한 얼굴, 잔잔한 미소로 대하여 편안한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는 눈으로 베푸는 안시(眼施)다. 맑고 부드러운 눈길을 줌으로써 상대방을 안심하게하고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는 언시(言施)이니 따뜻하고 진실되게 말함으로써 믿음을 주고, 긍정적인 말 한마디로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다.
넷째는 심시(心施)이니 너그럽게 감싸는 마음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고 보살피며 위로해주는 것이다.
다섯째는 신시(身施)이니 비록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베푸는 것이다. 헌혈이나 장기기증, 목욕봉사, 쓰레기 줍기 등이 이에 해당된다 하겠다.
여섯째는 다른 사람에게 앉을 자리를 내어주는 좌시(座施)이니 차안에서 노약자나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곱째는 찰시(察施)이니 굳이 곤궁한 상황을 묻지 않고 헤아려서 베푸는 일이니 어려운 가운데 있는 이의 고충을 잘 살펴서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자기가 가진 것을 조금씩 덜어내어 도와주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의 마음 씀씀이와, 비록 자기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 하더라도 더 어려운 남을 돕는 일에 기꺼이 나서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아름다운 전통, 이웃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서로 돕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을 향약(鄕約)의 규범으로 삼는 등 인보상조의 정신을 미덕으로 여겨 왔다. 요즈음은 '얼굴 없는 기부천사'들의 남모르는 선행이 있는가 하면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이 오히려 남을 돕는 일에 함께하기도 한다.
청마 유치환의 시 '행복'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된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주는 것에 대한 행복함”을 참으로 절절하게 표현하였다. 자기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베풀 때 자기 자신이 먼저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물질적으로는 점점 풍족해지는 반면 정신적인 여유는 메말라지고 있는데, 물질적인 나눔과 함께 서로 마음으로의 배려와 아량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풍조를 더욱 키워나갔으면 한다.
최근에는 봉사단체와 한 언론이 중심이 되어 “돈보다 값진 '나눔'… 재능을 나누자”는 비물질적인 기부운동도 펼쳐지고 있다. 이처럼 재물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들 가운데서 하루에 한 가지라도 실천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지는 것이야 말로 향기롭고 성숙된 시민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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