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종말이 왔다. 온통 잿빛이다. 식량은 바닥났고 사람들은 서로를 두려워하며 죽이거나 죽는다. 남자와 어린 아들은 필사적으로 남쪽으로 가고 있다. 그곳이 무엇을 약속하는 땅인지는 알 수 없다. ‘인육’을 먹는 악당을 만나기도 하고, 추위가 굶주림에 시달리지만 그래도 가야 한다.
하늘이 쪼개진 듯 강렬한 섬광이 번쩍였고 땅이 흔들렸으며 화염이 치솟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인류가 이룩한 문명은 잿더미로 변했다. ‘더 로드’는 ‘잿빛 황폐’ 위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길을 나선 남자와 아들의 이야기다.
대재앙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쫓는 자들은 물건을 빼앗고 쫓기는 자들의 살점까지 먹으려 든다. 이 끔찍한 묵시록의 세계에서 아들을 지키려는 아비의 부성애가 찡하게 가슴을 울린다.
“제가 죽으면 어떡하실 거예요?”
“네가 죽으면 나도 죽을 거야.”
“나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요?”
“응, 너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
극중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모든 걸 내어준다. 추위와 배고픔, 희망조차 없는 길에서 회한 따위는 그에게 사치일 뿐이다. 하루하루가 늘 고통이지만 품에 잠든 아들의 숨소리가 유일한 위로다.
험하고 얼어붙은 세상을 살아갈 아들을 위해 끊임없이 가르치고 강해지기를 주문한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아들에게 입에 총구를 넣어 방아쇠 당기는 법까지 가르친다. 때문에 어린 아들에겐 의심 많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진심이야말로 아들에게 남겨줄 최선의 선물인 거다.
영화의 원작인 코맥 매카시의 동명 소설은 영화화하기에 까다로운 작품으로 꼽혀왔다. 소설의 묘사대로 ‘거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가득 찬 소설을 이미지와 대사, 배우들의 표정으로 전부 나타내야하기 때문이다.
존 힐코트 감독은 소설이 ‘잿빛 황폐’로 표현한 대재앙 이후 세상을 충실하게 재현하려 애쓴다. 관객은 111분 상영시간 내내 펼쳐지는 암회색 화면에 포위당한다. 메마른 강,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것 같은 나무, 주인 없는 폐가 등 영화가 그린 대재앙 후의 세상은 ‘정말 그럴 것 같은’ 현실감으로 묵직하다.
휴머니즘도 희망조차도 사라진 비극적인 세상에 대한 회한과 원망이 왜 없으랴. 아버지 역의 비고 모텐슨의 연기는 가슴 저 밑에서부터 꾸역구역 차오르는 먹먹한 슬픔을 완벽하게 전달한다. 체력이 고갈되어도 할 수 있는 한 어떻게든 아들을 지키려는 그의 절절한 의지는 큰 소리 한 번 없이, 온갖 고생이 다 들어있는 표정과 시종 눈물을 머금은 불안한 눈빛으로 훌륭하게 설명된다.
‘더 로드’의 미덕은 비록 절망으로 가득하다해도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거다. 근거는 ‘인간의 선(善)’이다. 남자에게 아들은 ‘신이 존재하는 증거’이자 ‘아름다움과 선의 현현’이며, 그것으로 인해 미래로 걸음을 옮기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착한 자와 나쁜 자’에 관해 끊임없이 묻고 배우는 아들은 마침내 ‘선한 자’를 선택한다(게다가 아들은 ‘나쁜 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우를 범하지도 않는다). 인간성의 회복이 희망임을 깨닫는 것이다. 이 보다 더 절망적이면서 역설적으로 더 희망적인 영화는 없을 듯 싶다. 영화를 보고난 뒤 이 한마디는 뇌리에 깊게 박힌다.
“네 마음속 불씨를 꺼뜨리지 마라.”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