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용서는없다)감히 누가 누굴 용서하는가

■용서는 없다 감독: 김형준. 출연: 설경구, 류승범, 한혜진, 성지루.

　<줄거리>
　금강 하구둑 수풀에서 여섯 토막 난 여자 시신이 발견된다. 부검의 강민호의 과학적 진단과 형사 민서영의 활약으로 범인 이성호가 금세 검거된다. 그러나 강민호의 딸이 납치되고, 이 납치사건에 이성호가 연루돼 있음을 알게 된 강민호는 수사팀을 따돌리고 혼자 범인 추적에 나선다.

　설경구와 류승범. 연기 잘하기로 둘 째 가라면 서러워할 두 배우가 만났다는 것만으로 구미가 당긴다. 아니나 다를까. ‘용서는 없다’는 두 베테랑 배우가 만나 이뤄낸 고도의 화음이다.

　영문도 모른 채 딸을 납치당한 부검의 강민호와 강민호를 궁지에 몰아넣은 환경운동가 이성호의 게임. 스릴러의 재미를 배가해줄 장치는 일절 배제된다. 대신 두 배우의 날 것 그대로의 연기가 이 영화의 진짜 스릴이다.

　강민호로 분한 설경구는 ‘박하사탕’의 김영호처럼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온 몸의 에너지를 분노와 회한으로 폭발시킨다. 희대의 살인마 이성호 역의 류승범은 목소리조차 낮춘다. 입에 착 감기지 않는 듯 문어체 풍의 대사를 진지함과 빈정거림을 적절히 섞어 소화해낸 그의 캐릭터는 기억에 남을 만하다.

　‘용서는 없다’는 ‘누가’보다 ‘왜’에 집중한다. 일찌감치 범인을 드러내고 실타래를 풀듯이 차근차근 범행의 이유를 쫓는다. 구성은 비교적 매끈하다. 사건의 인과 관계는 앞뒤가 잘 맞는 편. 관객들의 판단을 헷갈리게 하는 줄거리 상의 ‘미끼’ 효과도 적절하게 사용된다.

　두 남자간의 두뇌싸움으로 시작한 영화는 두 남자의 처절한 복수극으로 치닫는다. 영화를 보고나면 관객들은 여러 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희대의 살인사건이라는 점에선 ‘살인의 추억’, ‘실시간 추격극’이라는 점에선 ‘추격자’가 떠오를 거다.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가 범인을 단독 추적하는 스토리는 ‘그놈 목소리’ ‘세븐데이즈’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막판엔 ‘나를 기억하지 못하냐’하는 ‘올드보이’식의 회고담도 깔린다. 독창성이 부족한 종합선물세트 같지만 그렇다고 아류작이라고 평가 절하할 정도는 아니다.

　구멍 뚫린 곳도 있다. 몇몇 부분에서는 정황이 맞지 않고 개연성도 떨어진다. 예를 들어 성호가 풀려나게 되는 결정적 증거, 즉 다른 용의자의 정액과 지문이 왜 그렇게 늦게 발견됐는지 말끔하게 정리해주지 못하니 어색하다. 신인 감독의 영화라는 걸 감안해도 4대강 사업에 대한 묘한 은유까지 담는 등 다소 과욕의 흔적도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막판 반전은 그 모든 자잘한 흠집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긴장감 넘치는 막판 30분과 극적인 반전은 근래 나온 국내 스릴러 영화 가운데 가장 돋보인다. 추리의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의 충격은 꽤 크다. 영화 초반 부검 장면을 보며 감독의 잔인한 취향에 진저리쳤던 관객은 막판에 크게 한 방 먹는다.

　물론 마지막의 강력한 한 방을 위해 줄달음치는 이 영화의 선택이 영리한 것이었는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극적 결말을 위해 억지로 꿰어 맞춘 듯한 설정, 그에 이르기까지 몇몇 곁가지 과정들은 뒤끝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올드보이’ 이후 가장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준다는 점만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스릴러로서 빠른 화면 전개와 번뜩이는 반전은 관객들에게 어필할 만한 충분한 매력을 지녔다. ‘용서는 없다’는 그렇게 한국형 하드보일드 장르의 스펙트럼을 한 뼘 더 넓혀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