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고등학교 과정은 인문교육과정과 직업교육과정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김나지움으로 불리는 통합된 학교 내에서 다양한 교육이 이뤄지는데 수도 스톡홀름에 있는 상뜨 에릭스 김나지움은 학생 수 1500명으로 지자체 내에서 가장 큰 규모다. 1937년 수공예를 가르치는 직업학교로 첫 출발한 이 학교는 현재 전기, 차량, 건축,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등 16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중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예술은 대학에 가기 위한 과정이며 나머지는 취업을 준비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직업과정을 배웠다고 해서 대학에 못가는 것은 아니며 이와 관련된 학교에 지원하면 가능하다. 학생들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국어, 영어, 수학, 역사, 문화 등 주요과목을 배우는 것은 물론이고 전기에 관심 있는 학생은 전기에 관련한 책을, 무용을 하는 학생은 무용에 대한 책을 좀 더 많이 읽는다. 특히 예술 프로그램의 경우 학교에서 하는 이론공부 외에도 음악, 연극, 무용 등 다른 사람들의 공연을 많이 보여주며 교사와 학생들이 서로 토론해가며 작품을 완성하고 공연함으로써 학교를 마치고 직업인이 되었을 때 바로 적응할 수 있도록 실용적이고 산교육을 위주로 한다.
우리가 사교육에 의존하는 음악과 미술, 무용 등 예술과정도 이곳에서는 모두 무료로 배우는데 학생들이 어느 지역 어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학비는 부모의 소득이 많든 적든, 장애인이든 그렇지 않든 전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몫이다.
이 학교 엘리자벳 샌드보로(Elisabet Sandborgh) 예술프로그램 학과장은 “예술프로그램에 있어 연극이나 댄스, 뮤지컬 등의 선택은 학생 스스로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열의와 만족도가 매우 높다”면서 “음악, 무용 등을 전공하는 학생들 중 일부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과외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학부모와 학생들은 학교에서 하는 교육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들려줬다.
퇴근 후 미술관으로… 누구나 즐기는 문화예술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이 입시 위주로 진행되는데 비해 스웨덴 학생들은 전공자가 아니어도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토록 하는데 이들이 예술교육을 하는 목적은 예술가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예술을 취미로 하는 시민을 기르는데 있다.
이런 보편적이고 평등한 문화예술교육 덕분인지 퇴근시간을 넘긴 평일 저녁 7시 살바도르 달리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은 문밖까지 길게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은 그림을 수집, 전시, 보관하는 기능뿐 아니라 아기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기자가 미술관을 방문한 날 아트스쿨 어린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바닥 가득 흰 종이를 펼쳐놓고 청색 물감을 손과 얼굴에 묻혀가며 온몸으로 색을 느끼는 '파란색을 연구하는 날' 수업을 하고 있었다.
마리아투브 어린이 미술교육디렉터는 “아이들은 모두 그림을 그릴 소질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미술교육을 하고 있으며 놀이를 통해 색을 체험하게 한 뒤 아이들을 미술관에 데리고 가서 작품 감상을 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미술관 교육은 미술에 관심이 부족한 10대들에게는 작가와 함께 예술작품의 창작과정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존 모데나(Zon Moderna)프로젝트'와 가족프로그램 등 다양한 연령과 계층에서 운영되는데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술교육이다. 전시장에 있는 대부분의 그림들을 입체감이 있는 조형물로 만들어 시각장애인들이 그림을 만져보고 느낄 수 있도록 했는데 빨간색은 뜨겁게, 파란색은 차갑게 온도 차이를 주는가하면 색깔마다 다른 재료와 질감으로 작품을 만지며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공부하고 싶으면 언제든 다시 할 수있어
평생학습 열풍이 불고 있는 우리나라처럼 스웨덴도 모든 사람들이 각기 다른 환경에서라도 같은 조건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민교육(성인교육·평생교육)과정이 있다.
스웨덴 전역에는 148개의 시민교육기관이 있는데 정부 주도아래 시작된 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활동을 하고자하는 시민들의 욕구에 의해 생겨난 자발적 스터디운동이다.
기자가 방문한 포크빌딩(Folkbilding)에서는 일반 음악분야와 록음악, 다큐멘터리 제작, 퇴직자 과정 등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19~25세까지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생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다시 공부를 하고 싶어 찾아온 사람들이거나 새로운 분야를 배우기 위해 오는 사람들로 진학과정과 평생교육과정이 동시에 운영되고 있다.
여기서 만난 오르겐 엥스베르그(28)씨는 고등학교에서는 사회과학을 공부했는데 요리사로 일하다가 10년 만에 음악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포크빌딩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하고 있다.
자기개발이든, 더 나은 직업을 찾기 위한 것이든, 단순히 배우려는 욕구이건 언제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경제적 부담 없이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비제도적인 교육시스템이 스웨덴에서는 보편타당하게 이뤄지고 있다.
/스웨덴=임연희 기자 lyh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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