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삼겹살을 파는 음식점에 가서 고기를 굽거나 떡국가게의 떡국 한 그릇을 비우기조차 번거롭고 번다한 곳이 바로 서울 명동 거리 아닌가. 그 혼잡한 길거리 복판에서 불을 피워 굽고 끓이겠다니 정녕 제 정신이 아닌 일로 비춰졌다. 어른들이 오래전부터 손 좀 보겠다고 별러왔던 온라인 공간에서 버젓이 진행된 댓글 놀이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황당하고 황망한 댓글의 작성자들은 연말 연초에 정말 삼겹살을 굽고 떡국을 끓여냈다. 행인들의 불편을 고려해 일정을 조율하고 관할 행정기관을 찾아가 법적인 절차를 차근차근 밟았다. 계획이 일부 수정되기는 했으나 그들은 굽고 춤추며 노래했다. 또 끓이고 윷을 놓고 큰 절을 올렸다.
자신을 베플, 즉, 베스트 댓글 작성자로 뽑아준다면 그러한 허황한 약조를 지키겠다던 여섯 명의 이십대 청년들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인터넷 공간 이용자들에게 '함부로' 뱉은 단 한 줄의 댓글이 해가 갈리는 날들 즈음에 벌어진 '명동 사건'의 시발점이었다.
반면 오프라인 세계의 여의도 의사당 주변에서는 '말 꺾기' 놀이가 간단없이 이어졌다. 법안의 날치기를 추방해야 한다던 예전의 야당은 여당이 되어 날치기를 연발하고 날치기 통과를 막아내겠다는 현재의 야당은 전술적인 실패를 거듭했다. 국회의장은 노동관계 법안을 직권상정하지 않겠다고 천명했으나 그의 말은 신뢰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여당은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온라인상의 젊은이들이 열 마디의 댓글 약속을 위해 바람찬 명동 거리의 한파 속에서 고기를 굽고 떡국을 끓이던 시각에 무수한 말 공약을 무더기로 내걸었던 어른 정치인들은 따사한 국회의사당 실내 공간에서 자신들이 세운 말을 스스로 꺾어서 삼켜버렸다.
방송정책 분야에서 쏟아지는 관계자들의 말도 생청지고 허풍스럽다. 국민들에게 다양한 방송서비스를 제공하고 미디어 기업에게는 세계적인 경쟁력 구축을 부르대며 추진해 오던 정책 일정이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작년 말까지 사업자 선정을 마무리하겠다던 공언은 온데 간데 없고 올 해 초에는 매듭지으려던 계획도 지자체 선거 이후로 연기됐다는 풍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기요금에 통합해서 거둬가는 방송수신료를 두 배 이상 대폭 인상하겠다는 말 연기가 여기저기서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프로그램의 질적인 향상을 위해 수신료를 인상한다기 보다 소수의 종합편성참여 미디어기업들의 뒤를 봐주기 위해서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없는 강에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말의 성찬을 차리는 족속이 정치인이란다. 그 공약 (公約)의 공약성 (空約性)을 타박하면 정치인들은 다리 밑으로 갓난아이 손금같은 실개천을 파서라도 마른 강물 한 종지기를 흘리려 할 것이다. 내뱉으면 죄다 말이 되는 줄 아는 지리재기한 정치인들은 삼겹살 한 점 함부로 구워먹으려 해선 안된다. 단 한 줄의 인터넷 댓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언 발을 동동거리며 찬 거리에서 불을 지피던 스무살 청년들을 먼저 한번 돌아보라. 함부로 꺾어서 삼키고 자발없이 뒤집기해서야 어찌 공인의 말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삼겹살 함부로 구워 먹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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