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수 건양대 총장 |
이같은 대통령의 결의를 보면서 대학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대학의 주변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각오를 갖게 된다. 대통령은 올해를 임기 중반을 통과하는 해로 규정하고 '일로영일(一勞永逸, 지금의 노고를 통해 이후 오랫동안 안락을 누림)'의 자세로 임하겠다고 결전의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대학의 입장에서 보면 여태까지는 이렇다 할 '일로(一勞)'도 없이 '영일(永逸)'만 먼저 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동안 우리 학부모들의 열렬한 학구열 덕분에 대학은 문만 열어놓으면 학생들은 저절로 꽉꽉 차게 되어 큰 고민 없이 운영해올 수 있었다. 또 급속한 산업 팽창으로 학생들은 대학문을 나서기가 바쁘게 일자리가 보장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학은 '영일'에 안주해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상황은 180도로 바뀌었다. 대학이 '영일' 하고 있는 동안, 우리 학부모들은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학자금을 대주기 위해 엄청난 땀을 흘려왔으며, 그럼에도 결과는 자녀의 '실업(失業)'으로 귀결되는 고통을 감내해온 것이다.
그래서 병인년 새해를 맞아 우리 대학들은 '일로'가 아니라 '천로(千勞)' '만로(萬勞)'의 자세로 바로서야 한다. '영일'은 당분간 유보해야 한다. 대학에도 변화와 개혁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그동안의 안일무사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채찍질 해나가야 한다. 대통령이 올해 정부의 모토를 '일자리 정부'로 내세웠듯이, 대학인들 역시 올해 대학의 모토를 '일자리 대학'으로 내세워서라도 실업문제 해소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등록금 문제도 이미 몇해 전부터 많은 대학들이 인상을 자제하며 허리띠를 졸라매 왔지만 올해도 다시한번 졸라매는 수밖에 없다.
또한 '더 큰 대한민국'의 필수적 요건이 '더 큰 대학' 임은 말할 나위 없다. 크다는 것이 물론 외형상의 크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실 있는 대학을 말하는 것이다. 동시에 '국격(國格)' 못지 않게 '학격(學格)'도 중요하다.
그래서 첫번째로 교육중심대학이 필요하다. 물론 대학의 연구 기능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교육 기능과 연구 기능의 경중을 가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대학이 많은 경우에는 그 역할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잘 가르치는 데 치중하여 학생들이 좋은 직업을 갖고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교육중심대학을 앞으로 육성해야 할 것이다.
두번째는 '학격'과 관련되는 것으로 교수, 평가 등 학사 문제나 학생 지도 문제 등에 있어서도 모든 것을 학생과 학부모의 편에서 공명정대하게 하는 클린학사제도의 운영도 필요하다. 대학의 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타율적인 지휘·감독 이전에 대학 스스로의 노력이다. 인구의 감소로 고교 졸업생 수가 3분의1이 급감하게 되는 2010년대 후반에 살아남는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자 시절 대학 총장들과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교육제도의 변화에 있어 어떤 안보다도 정부가 손을 떼버리는 것이 가장 좋다”고 밝혔던 사실을 기억한다. 정부는 스스로 옥석을 가리려는 수고보다는, 여러 가지 지표로 나타나는 대학들의 '학격'을 잘 가려 가능성 있는 대학에 과감한 지원을 해주는 노력이 더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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