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비빔밥은 담백하고 구수하다고 평하겠다. 수덕사 수덕여관에서 보리된장에 비벼먹던 비빔밥의 산미(山味), 그리고 취, 더덕, 고사리, 버섯 등속을 넣고 고추장에 비빈 속리산 산채비빔밥도 별미다. 나 말고도 다수 한국인이 느끼는 맛 공감대, 입맛의 내셔널리즘을 연초부터 박박 긁은 이가 있다. 바로 일본인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기자인 구로다는 칼럼에서 비빔밥을 묘사하기를 '겉으로 보기엔 예쁜데 먹을 땐 엉망진창이 된다' 해서 네티즌을 자극했다. 한데 조갑제씨가 '음식점 주인이 손님으로부터 지적을 당하면 앞으로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를 보여야지'라며 두둔하고 나섰다. 겉만 보면 일본 우익과 한국 우익의 글로 주거니 받거니다.
구로다는 일본 입맛의 대표선수가 아니다. 일본인 중에 비빔밥 마니아도 있다. 긴자, 롯폰기에서는 김치와 순두부찌개가 인기다. 좋아하는 작가인 요시모토 바나나는 나처럼 간장게장을 좋아한다. 이전에 필자는 와사비가 아닌 초고추장에 찍어먹으며, 상추·깻잎에 된장·마늘까지 넣는 한색(韓色)을 왜색(倭色) 운운한다는 구로다의 불만을 계간지에 다룬 적이 있다.
돼지 수육을 예술품으로 극찬한 구로다는 때로 한국음식 예찬론자였다. 비빔밥과 치라시스시의 비교는―밥에 국물을 끼얹는 일본의 고양이 밥과 국물에 밥을 마는 한국 국밥의 경우에서처럼―비교대상의 오류다. 언젠가 구로다는 한수산과의 대화에서 “김치는 세계적인 식품이 되고 있지만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기 전에) 객관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괘씸하긴 해도 그런 충고의 연장선상일 수도 있겠다.
구로다는 비빔밥이 '섞다'보다 '뒤섞다'에 가깝다고 본 것 같다. 섞음의 문화에도 정서가 있는데, '뒤섞다'는 잡다하게 마구 섞는 의미가 강하다. 그가 유창하다 생각하는 한국말은 사실 깐질기다. '썰다'를 영어로 'cut'(컷, 커트) 하면 끝나지만 우린 41가지다. 깍뚝썰기, 당겨썰기, 막대썰기, 반달썰기, 십자썰기, 얄팍썰기, 조붓썰기, 토막썰기, 통썰기 등등. 음식문화엔 우열이 아닌 차이가 존재한다고 매듭짓는 편이 좋겠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외국인에게 비빔밥 한 그릇에 깃든 우주라든지 복합미나 다원의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정치란 민심의 밥상 차리기라며, 대전에 온 국회의원이 만들던 민심 비빔밥이 기억에 남는다. 진정한 비빔밥 정신! 비빔밥 '망언' 논쟁을 뒤로 하고, 새해 새 삶의 법칙으로 삼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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