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美)란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빛은 어둠의 자궁 속에서 산다. 무질서하고 정형이 없는 덩어리로 모든 물질의 원형과 상상의 에너지로 꽉 찬 공간이다.
창작 하는데 있어 혼란스러움은 끊임없이 자기 부정과 대상을 향한 사랑이 계속되다가 어느 한순간 새로운 전형의 그늘을 만들게 된 후 작품이 완성된다. 해외 박물관에 가면 작품 전시 중 조명의 밝기를 아주 낮게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볼 일이다. 작품을 보호하려고 하는 이유도 있지만 작품의 아름다움에 대한 상상력 즉 작가와 보는 이와의 거리에 대한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작품으로 인한 질서 속에서 새로운 하나의 진실을 낳는다. 작가와 보는 이가 하나가 되는 알이 생산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작품과 작가에 대한 그리고 보는 이에 대한 사랑과 보는 이의 인생에 대한 반추가 있고 위트가 있는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작가와 관람자의 품을 떠나서 작품 스스로 생명력을 갖는다. 그때부터는 질긴 생명력을 갖고 유전되는 것이다. 어떤 작가는 살아생전 그림 한 점을 팔기도 버거운데 지금껏 역사 속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예술성의 산맥을 만들고 바다 같은 스스로의 열정을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후손들에게 대물림을 한다. 그러한 것들이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문화가 되는 것이다. 고흐도 그렇고 숱한 역경속의 화가들을 보라, 가까운 근현대로 가면 박수근을 보라, 그의 삶이 아름다워 지는 것은 담배를 감싼 은박지가 아니던가. 그의 삶의 피폐함과 자기부정이 낳은 작품이 무한한 가치의 현대의 상상력을 제공하고 있지 않는가.
비근한 예로 지역작가 중에 사진작가 신건이 선생을 보자. 평생에 렌즈를 통한 사진작품에 작품생활 60년 인생의 그래프를 그리며 살았다. 그에게 남는 것은 수만 장의 작품 사진과 스크랩 자료집 그리고 수억 원을 호가하는 카메라 병마를 이겨낸 수술자국 뿐이다.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모 기업에 사진 박물관을 지으려고 하는데 기증해 달라는 제의를 받고 선생은 지역에 설립하면 하겠다고 해서 무산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대전 지역 모 공간에 기증을 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작가 자신을 감싸고 있는 자양분에 대한 감사와 지역에 대한 사랑이 깊은 까닭이다.
지금도 아침 5시 30분이면 그의 하루 어김없이 일과가 시작된다. 좀 더 안락한 공간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욕심 부리지 않아서 시작한 삶이다. 사진계와 지역문화에 대한 지역에 대한 사랑이 그의 비움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그가 기증한 자료는 자신의 재산을 기증한 게 아니다. 작가 자신의 60년 작품 인생을 기증한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창의적인 에너지를 기증한 것이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삶 그의 족적을 해석하고 그가 가지고 있는 창의적인 경험과 미적 노하우를 돌아보지 않는 작금의 우리의 세태를 알자는 것이다.
수많은 문화원과 수많은 문화 센터에 누가 있는가? 과연 창조적 경험을 가진 에너지가 있는 가란 질문에 아니다가 우선이다. 지역의 많은 원로들의 고견과 그들이 바라보는 미래의 우리가 경계해야 할 본질적 얘기를 수용해 미래를 준비하는데 실험정신의 밑바탕에 그들의 에너지를 수용해야 한다. 많은 대중들에게 후손들에게 안타까움 보다는 살아생전에 사랑받아 아름답고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추억을 밑바탕에 물려주고 그 다음 그의 예술작품을 소중하게 보전하고 그 후에 박물관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딴 품에서 여유롭고 평화롭게 거닐고 그의 삶을 통해 진정한 가치를 감사하는 진정한 지역 예술이 되는 경인년이 되자는 것이다.
새해에는 지역원로들과 젊은 작가들의 소통이 많은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많은 시민들이 대전문화재단의 출범에 기대와 바람도 많다. 문화재단의 초대 이사장도 문화적 마인드와 정책적 경험 그리고 폭넓은 행정에 대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기대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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