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윤도 건양대 교수 |
정치의 개념에 대해 많은 선현들이 얘기한 바 있다. 영국왕 헨리3세는 “정치와 통치는 타협의 기술이요, 한가지 관심사를 다른 관심사와 저울질하는 기술이다”라고 했으며 독일의 명재상 비스마르크는 “정치는 기술이지 배울 수 있는 학문이 아니다”라고 설파했다. 또 영국의 처칠 총리는 “정치란 승부를 정하는 것이 아니고 진실한 일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같은 선현들의 말씀에 견주어 본다면 분명 현재 우리의 정치는 정도(正道)와 거리가 멀다. 정치인들이 타협의 기술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국민을 볼모로 승부를 벌이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라는 대의정치는 실종되고, 힘과 아집의 정치가 되풀이 되고 있다. 국민을 편안히 살게 해주는 것이 정치라고 말은 하면서도 한국정치사에 요즘처럼 국민을 피곤하게 하는 정치가 또 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60, 70년대는 워낙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 또 80년대 전반까지는 군사독재정권 때문에 정치인들의 능력을 제대로 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치자. 그러면 OECD 회원국에 원조공여국이 될 만큼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민주화도 만개해 있는 지금, 2000년대에도 정치인들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그것은 정치인들의 무능 탓으로 돌릴 수 밖에 없다.
새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아오던 야당의 행태는 조금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나름대로의 대안 제시도 없으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 일변도로 나서는 것은 치졸하기 짝이 없다. 노동관계법에서 미디어 관련법, 이제 새해 예산안까지 물고 늘어지고 있다. 최소한 법정시한은 지켜야 함에도 아랑곳 없다. 도대체 이 나라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정부가 하지 않는다고 수차례 밝힌 `대운하 사업'에 쓰일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4대강 살리기' 사업 예산을 상당부분 깎아 민생복지에 돌리자는 것이다. 취지는 좋다. 그러나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려는 사업을 제지하기에는 소수 여당의 힘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고 있다. 국민에게 보이기 위한 것인가. 회의장만 점거하고 있다고 능사가 아니다. 대화와 타협으로 최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이에 대응하는 여당의 태도는 더욱 한심스럽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여당은 거대한 의석을 지니고도 제대로 타협의 정치를 펴지 못하고 있다. 예산안이 법정기일을 지키지 못하면 이유야 어쨌든간에 1차적인 책임은 여당에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여당 출신인 국회의장의 태도는 더욱 한심스럽다. 예산안에 대한 의장의 직권상정은 안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며 여야 대타협을 촉구하고 있다.
의장으로서 고육지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진정 국민을 생각하고 민생을 염려하는 국회의장이라면 굳이 직권상정을 안한다고 미리 선언할 필요도 없다. 중재를 하다하다 안되면 직권상정이라도 하겠다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타협을 촉진시키는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에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권을 주고 있는 것도 바로 마지막에 사용하라는 것이다.
여야 싸움이 국가운영에 차질을 가져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무능하고 무소신한 정치인들을 뽑은 것은 바로 국민들이기에 그 책임 또한 고스란히 국민몫이다. 그래서 예산통과 등 국회의원들이 법정시한을 지키지 못할 때에는 의원들의 세비를 삭감해서라도 그 책임을 엄히 물어야 하며, 차기에서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의 분노를 깨닫게 해야 한다고 외치고 싶다. 기축년 마지막 해를 바라보면서 제발 새해는 이 분노를 식혀주고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정치가 이루어지길 간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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