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수 서산초등학교 교사 |
빼딱하니 삐뚤어진 기준이, 한 달 30일 중 5일을 학교 나오면 잘 나오는 천희, 착하기만 하지 한글이며 덧셈, 뺄셈이 전혀 안 되는 세영이가 우리 학급에서 겉도는 것은 아무리 학급수가 13명밖에 안된다고 해도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다.
왜 아이들이 이렇게 방치되고 있는 것일까. 학교는 뭘 하고 있었으며, 사회복지단체는,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기에 정작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아무런 손길이 닿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과 분노가 함께 치밀어 올랐다.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첫째는 `나의 월급 털기', 둘째는 `인근 기업체에서 학생성금지원 받기', 세 번째는 `방송 이용하기'였다. 첫째, 둘째 방법은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번째 `방송 이용하기'는 처음 한 달간 그 효과가 놀라웠다. 천희의 이야기가 방송을 타면서 성금과 지원이 봇물 터지듯 이루어졌는데 문제는 잠깐 반짝였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문득 걸음이 멈춰졌다. 왜 내가 이런 문제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야만 하느냐. 나는 교사다. 학생들에게 교육목표를 정하고 정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가르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가르치는 것이 직업인 교사인 것이다. 그런데 정작 가르치는 것은 뒤로한 채, 그들의 생계와 병원비와 학자금을 고민해 줘야 한다니, 이것은 교사가 아닌 그들의 부모, 그들이 속한 사회와 정부가 해야 할 몫이 아닌가.
“선생님, 저도 학교에 나가고 싶은데요.”
세영이는 그 날도, 그 다음날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 아니, 올 수 없었다. 엄마 아빠가 병원에 가셔야 했고, 밭에 있는 배추도 뽑아야 했고, 밀린 빨래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발 올 수 없는 날에는 전화라도 해 달라는 나의 요청에 어느 날, 세영이에게서 걸려온 전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세영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 말 밖에 없었다.
“세영아, 알아. 네 마음 선생님이 다 알아.”
야속한 채로 시간은 그렇게 흘렀고 아이들은 졸업했으며 지금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5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새 정부가 모두를 배려하는 교육, 교육비 부담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친서민교육정책'을 내놓았다. 학교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아이들, 아니, 오고 싶지 않은 아이들. 벌써 5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정작 교육정책 중 변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학생들이 여전히 그늘 속에 묻혀 있으며, 학교에 가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고, 사교육비에 부담을 가지고 있고, 가정에 방치되어 있다.
그들에게 있어야 할 따뜻한 가정과 편안하게 공부할 학교, 남들 다 가는 학원에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그런 확고하고 변하지 않는 교육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새 정부가 만들어가는 `친서민교육정책'이 천둥처럼 큰 기적 소리로 잠든 이를 깨우며 거침없이 달려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기준이의 꿈이, 천희의 꿈이, 세영이의 꿈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희망으로 만들어 가기를 간절히 염원해 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