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안다, 네 마음 알아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영수]안다, 네 마음 알아

[교육단상]김영수 서산초등학교 교사

  • 승인 2009-12-29 00:00
  • 신문게재 2009-12-30 20면
  • 김영수 서산초등학교 교사김영수 서산초등학교 교사
“기준이는 할머니랑 단둘이 살아요. 천희는 골수에 물이 차는 난치병이고, 세영이라는 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맹아예요. 두 분 모두 앞을 전혀 볼 수가 없죠. 세영이가 사실상 이 집의 가장 노릇을 담당하고 있지요. 선생님 죄송한데요, 이게 끝이 아니에요. 선생님 반에 편모, 편부 아동도 세 명쯤 더 있어요.”

▲ 김영수 서산초등학교 교사
▲ 김영수 서산초등학교 교사
한마디로 `허걱'이다. 새 부임지에서 전해들은 우리반 학급 실태. 5학년 1반 학생들 13명 중 6명이 극빈가정 및 도움이 필요한 가정이라니. 그 중 세 명은 세상의 온갖 불행들을 모두 모아 놓은 것처럼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으므로 차라리 편모, 편부는 행복한 축에 들었다.

빼딱하니 삐뚤어진 기준이, 한 달 30일 중 5일을 학교 나오면 잘 나오는 천희, 착하기만 하지 한글이며 덧셈, 뺄셈이 전혀 안 되는 세영이가 우리 학급에서 겉도는 것은 아무리 학급수가 13명밖에 안된다고 해도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다.

왜 아이들이 이렇게 방치되고 있는 것일까. 학교는 뭘 하고 있었으며, 사회복지단체는,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기에 정작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아무런 손길이 닿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과 분노가 함께 치밀어 올랐다.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첫째는 `나의 월급 털기', 둘째는 `인근 기업체에서 학생성금지원 받기', 세 번째는 `방송 이용하기'였다. 첫째, 둘째 방법은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번째 `방송 이용하기'는 처음 한 달간 그 효과가 놀라웠다. 천희의 이야기가 방송을 타면서 성금과 지원이 봇물 터지듯 이루어졌는데 문제는 잠깐 반짝였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문득 걸음이 멈춰졌다. 왜 내가 이런 문제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야만 하느냐. 나는 교사다. 학생들에게 교육목표를 정하고 정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가르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가르치는 것이 직업인 교사인 것이다. 그런데 정작 가르치는 것은 뒤로한 채, 그들의 생계와 병원비와 학자금을 고민해 줘야 한다니, 이것은 교사가 아닌 그들의 부모, 그들이 속한 사회와 정부가 해야 할 몫이 아닌가.

“선생님, 저도 학교에 나가고 싶은데요.”

세영이는 그 날도, 그 다음날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 아니, 올 수 없었다. 엄마 아빠가 병원에 가셔야 했고, 밭에 있는 배추도 뽑아야 했고, 밀린 빨래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발 올 수 없는 날에는 전화라도 해 달라는 나의 요청에 어느 날, 세영이에게서 걸려온 전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세영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 말 밖에 없었다.

“세영아, 알아. 네 마음 선생님이 다 알아.”

야속한 채로 시간은 그렇게 흘렀고 아이들은 졸업했으며 지금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5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새 정부가 모두를 배려하는 교육, 교육비 부담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친서민교육정책'을 내놓았다. 학교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아이들, 아니, 오고 싶지 않은 아이들. 벌써 5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정작 교육정책 중 변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학생들이 여전히 그늘 속에 묻혀 있으며, 학교에 가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고, 사교육비에 부담을 가지고 있고, 가정에 방치되어 있다.

그들에게 있어야 할 따뜻한 가정과 편안하게 공부할 학교, 남들 다 가는 학원에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그런 확고하고 변하지 않는 교육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새 정부가 만들어가는 `친서민교육정책'이 천둥처럼 큰 기적 소리로 잠든 이를 깨우며 거침없이 달려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기준이의 꿈이, 천희의 꿈이, 세영이의 꿈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희망으로 만들어 가기를 간절히 염원해 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2.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4.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5.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1.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2.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3.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4.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5.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