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전 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장 |
공정방송을 표방하며 다방면의 노력을 경주하던, 공적인 약속 하에 일정한 임기가 보장되던 KBS 사장을, 전 정권과 유착한 인사이기 때문에 용납하기 어렵다는 인식 아래-이를 내어 놓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감사원을 동원하며 업무상의 흠결을 찾아내어 논리가 도무지 서지 않은 이유로 해임을 강제했었던 관계 당국은, 그들이 문제 삼았던 내용에 대해 법원이 혐의 없다고 판결하고 해임 무효를 밝혔는데도, 해당인사를 복직시키기는커녕 이에 대한 해명 한마디, 사과 한마디 없는 판이다.
또 있다. 교사들이 현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집단적으로 의견을 모아 표현했다고 하여 교육당국은 교사의 직을 박탈해 버렸다. 소청위원회에서 일고의 고려도 없었다. 행정소송이 진행되고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파직 당한 교사들은 법정 투쟁을 벌이겠지만, 법률전문인들은 이미 이들이 거의 무혐의 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예단하고 있다. 여기에도 권력집단의 배째라 의식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올 해 뻔스러움의 대미는 역시 세종시 문제를 별 볼일 없는 문제인 마냥 아무 준비도 없이 터뜨리고 본 현 최고 집권자가 장식하는 듯하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이미 문제라고 인식했다면서 그저 충청민의 표를 얻기 위해 임시변통으로 거짓 약속을 했으며, 그 이후에도 몇 번씩이나 찬란한 세종 시 조성을 반복하며 외쳤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양심선언이라면서 세종시법 이행을 번복하는 것을 본 국민들은 어이없는 실소와 분노를 표출할 가치도 느끼지 않을 값싼 정치행위에 그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는 수 없이 화려한 언어로 새로운 형태의 교육과 과학의 신도시 조성을 외치지만 그건 볼품없는, 가짜 약을 팔려고 거짓 장사꾼이 쳐대는 사기성 꽹가리 소리로 들릴 뿐이다. 그 언어 어디에도 한 나라를 대변하는 이의 품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차라리 국민과의 약속에 대한 `신뢰'라는 간단한 한 마디로 문제를 지적하는 한 여인의 조용한 음성이 천금의 무게와 가치로 느껴진다.
세종시 문제는 단기간의 효율성에 관련된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국가의 균형발전이라는, 그들이 변명조로 말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백년대계의 문제라는 것은 웬만한 한국인이면 모두 동의하는 문제다. 권력집단의 일방적인 선전 활동에 국민들은 냉소적인 무반응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조작의 냄새가 묻어나는 각종 여론조사의 수치에 판단을 바꿀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 어느 누구 보다 일찍 바람에 몸을 눕히고, 적절한 때에 몸을 일으키는 풀과 같은 민초의 지혜를 노래한 김수영의 시어(詩語)를 그들이 알 리가 없다.
원로 소설가 박완서의 옛 소설 제목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가 호소하듯이, 그 슬픔은 파렴치한 이들에게 국민들이 함께 더불어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힘으로 솟아 날 것이다. 새해에는 자신의 부족함과 경박함을 스스로 깨닫는 부끄러움을 모두가 지닐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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