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이 요괴의 손에 넘어가자 신선들은 천관대사와 화담에게 도움을 요청해 요괴들을 봉인한다. 그 후 천관대사가 의문의 죽음을 맞고, 그의 망나니 제자 전우치가 범인으로 몰려 개 초랭이와 함께 족자에 봉인된다. 2009년 봉인된 요괴들이 세상에 나타나고, 신선들은 내키지 않지만 전우치를 500년 만에 불러낸다.
먼저 칭찬부터. ‘전우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차별화되는 한국적 영화 오락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박수를 받을 만하다. 조선시대 고전소설 ‘전우치전’에서 캐릭터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핵심 모티브에서 볼거리, 웃음의 스타일까지도 한국적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전우치 캐릭터는 매우 성공적이다. 건들건들하고 뺀질뺀질한 전우치는 꽤 흥미롭다. 진지함과는 담을 쌓은, 넉살좋고 익살맞은(심지어 마지막 화담과의 대결에서도 그의 장난기는 가시지 않는다) 캐릭터는 차별화된 한국형 슈퍼히어로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는다. 지붕 위를 날아다니고 분신술을 펼치며 요괴와 싸우는 전우치의 액션도 날카롭고 스피디하기보다는 둥글둥글 유들유들한, 지극히 한국적인 선, 곡선이다.
그러나 최동훈 영화가 늘 지녔던 구성의 짜릿함을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기대치를 조금 낮추는 게 좋겠다. 둔갑술과 염력, 축지 등 잔재미는 가득하지만 그것들을 단단히 지탱하는 굵은 동아줄이 없다. 긴장감이 약하고 반복적인 내러티브는 결국 어느 순간부터 관객이 그때그때 펼쳐지는 코미디와 볼거리에만 몰두하게 할 뿐 이야기 진행 자체에 관심을 잃게 만든다. 최동훈 특유의 ‘뻥’하고 터지는 반전도 없다.
전작들에 비하면 듬성듬성 구멍이 뚫려 있긴 해도 나름 허당의 즐거움이 썩 괜찮다. CG는 매끄럽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임수정의 팜므파탈 변신은 너무 짧아서 아쉬울 만큼 매혹적이다. 주진모 송영창 김상호가 연기하는 좀 모자란 신선 3인방은 ‘올해의 조연상’ 후보로 손색없다.
정두홍 무술감독과 서울액션스쿨이 만들어낸 와이어 액션도 그동안의 한국영화 중 최고의 공중부양 액션을 선보인다.
천방지축 전우치가 조선시대에 만난 미모의 양반 여인이자 현대에서 그녀와 꼭 닮은 배우 코디네이터 인경과 러브 라인을 형성하고, 원래 개였지만 사람이 된 초랭이와 슬랩스틱 코미디 호흡도 보여주는가 하면, 요괴들에 이어 마지막으로 화담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이야기는 신나고 유쾌하다. 창의적인 소재와 한국영화가 도전하지 못했던 장르의 즐거움을 발견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전우치’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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