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과 교수 |
`백년대계'란 눈앞에 보이는 단기적 성과보다는 먼 미래를 내다보는 원대한 비전과 목표를 갖고 세운 계획을 말한다. 그런데 행정의 효율성이라고 하는 것은 주어진 목표를 달성함에 고려해야 할 수단적 가치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것이 결코 국가의 백년대계를 세우는데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진정 국가의 백년대계를 세움에 기초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국민과 정치지도자 사이의 믿음이요 신뢰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와 자공의 대화를 들어 보자.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백성을 배불리 먹이고,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백성의 믿음을 얻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자공은 “그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합니까?” 하였다. 공자는 “먼저 국방을 버릴 것이고, 다음에는 배불리 먹이는 것을 버릴 것이다. 그렇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국가가 존립할 수 없어서 국민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였다. 국방이나 경제보다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정치의 요체임을 설파한 것이다.
세종시 건설이 행정의 비효율을 가져오기 때문에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이를 수정해야 한다는 말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사고다. 정부정책 결정과정에서 효율성보다 더욱 근본적 토대가 되는 것은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다.
지난 22일 대전을 찾은 이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은 정략적 판단과는 무관한 오직 실용주의적 판단에 의한 선택임을 강조했다. 또한, 총리를 비롯한 당·정·청 고위 인사들이 이 지역에 내려와 국민에게 세종시 수정의 당위성을 설득하고 있다. 설득이 지나쳐 경우에 따라서 지역민을 우롱하는 궤변과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세종시 수정은 국가 미래를 위한 진정성이 담긴 고민이고 백년대계이니 믿어달라고 한다.
지금 누가 누구에게 진정성을 운운한다는 말인가? 국민과의 엄중한 약속조차 헌신짝처럼 내팽개쳐 신뢰를 잃어버린 사람의 말을 누가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약속을 어긴 사람의 또 다른 약속을 당신들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 대통령이 살아온 삶은 진정성을 내세우기에는 거리가 있으며, 이것이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못하는 원죄가 되고 있다.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모여 있고 국가 자원의 대부분이 집중된 나라를 정상적인 국가라 할 수 없다. 행정도시 건설은 혁신도시, 기업도시와 함께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한 백년대계의 시발점이다. 단순히 대학교 몇 개와 연구소가 들어서는 지방 도시 하나를 건설하는 사업이 아니다. 서울이 독점하고 있는 권력과 자원 일부를 지방으로 분산시키자는 것이다. 현 정부가 행정도시 건설을 무산시키고자 하는 진짜 이유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기득권 보호에 지나지 않는다.
그동안 강부자 내각, 수도권 규제 완화, 재벌 특혜, 부자 감세 등을 통해 가진 자들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진정 `백년대계'라고 말하려면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며, 특정 계층이 아닌 전체 국민의 삶의 질과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백년대계는 지나치게 근시안적이고 수도권과 가진 자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백년대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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