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상하려는 봉황의 꿈, 백제금동대향로
2. 룽먼석굴(龍門石窟)에 남겨진 백제인의 흔적
3. 서산마애삼존불과 백제인의 미소
4. 부여 정림사와 뤄양 영녕사 소조상
5. 사비도성과 난징(南京)의 건강성
6. 무령왕릉속의 독창적 문화인
7. 백제 유민들의 흔적
8. 백제문화 탐구의 새로운 모색
9. 사진으로 보는 중국속의 백제문화
10. 시리즈를 마치며(좌담회)
10. 시리즈를 마치며(좌담회)
창간 58주년을 기념해 충남역사문화연구원과 공동으로 `중국속의 백제문화'를 기획·연재해온 본보는 시리즈를 마치며 백제문화의 전문가 5명을 초청해 좌담회를 마련했다. 백제문화의 현황을 분석하는 한편 중국과 교류 관계의 제반 문제점, 백제학의 전문가 양성문제, 대백제전의 발전 방향 등 다양한 의견들을 나눴다. <편집자 주>
▲사회: 박기성 부국장
▲참석자(가나다 순): 강종원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박순발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 이용현 국립부여박물관 학예연구사, 여홍기 부여군청 문화재 계장, 정상기 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사회지난 9월, 10박 11일간 중국의 뤄양 등 4개 도시를 돌며 백제 관련 문화를 취재하면서 느낀 점 가운데 하나가 중국과의 교류관계가 다소 허술하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부여군이 뤄양과 오래전부터 교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여홍기 계장부여군이 중국과 교류를 시작한 것은 지난 1995년부터다. 도청에서 의자왕 묘 찾기를 실행하면서 부여군에서도 관심 갖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교류한 것은 1997년 뤄양하고 7개 항목의 협약을 맺으면서부터다. 문화예술 교류 및 문화재를 교환 전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주로 인적 교류를 원하는 반면 우리는 경제 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처럼 중국과 우리는 생각의 차이가 있다. 뤄양 유물전(1998) 교환 전시를 통해 물꼬를 텄다. 의자왕 묘 찾기는 항공촬영 등 발굴여건 의견 나눴지만 고대 유물을 찾는다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직 인적 교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양 지역 축제 교류 관계는 유지 하고 있다.
▲강종원 연구위원간접적으로 교류가 이뤄지긴 하지만 우여곡절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어 알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나 교류는 관에서 선행이 이뤄지고 필요하면 학계의 도움을 받는 정도다. 연구가 이뤄지고 대상이 정해진 다음에 교류가 이뤄지면 좋은데 관 주도의 교류가 있다 보니 행사성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교류 명목으로 전공자 한명에 여러 사람이 함께 가다보니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는 등 미흡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박순발 교수연구회를 만들면서부터 해마다 (중국과)인적 교류를 해왔다. 중국과 교류를 추진할 때 학술적인 것과 축제적인 것은 구분돼야 한다. 관에서 했던 것은 학술적인 목적은 아니다. 필히 사람과 사람의 교류, 특히 전문가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한다. 중국은 특히 관계를 중시하는 나라다. 중국에서는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아는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수장고도 처음 가서는 열어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베이징대를 거치지 않고서는 중국 어디 가서도 해결이 안 된다. 중국 유명 대학의 인적 네트워크를 알아야 한다. 길림대나 난징대와 관계를 맺고 있어야 출토 유물을 알 수 있다. 네트워크가 없을 경우 발굴 사진도 찍지 못한다. 때문에 인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정상기 실장아직까지 중국과의 인맥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은 공주나 부여 박물관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국과 한국은 체제가 다르다.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자료를 찾아 낼 수 있었던 것은 개인 연구자들의 노력이다. 중국과 교류를 맺기 시작한 것은 20 여 년 전이다. 이 기간에 기관간의 관계 맺기는 어려움이 있다. 이는 한국 박물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간의 문제다. 제가 볼 때는 우리가 제대로 국가기관끼리 관계했던 것은 없다고 봐야한다. 이제 시작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좁은 우리 시각에서 넓은 대륙을 상대하려면 그들의 시각에서 바라봐야한다는 것이다.
-사회우리나라 박물관 관장들 또는 연구자들이 2~3년마다 바뀌는 것도 교류의 난맥상을 초래하는 문제인 것 같다.
▲정상기 실장우리가 중국을 잘 알아야 한다. 난징 등의 박물관은 시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다. 관장이 10년 넘게 한다. 이유는 관장들이 박물관을 운영할 수 있는 자금을 끌어와야 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한국은 국립이다. 중국은 반 사립박물관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다. 뤄양 박물관은 관장이 자기 그림을 팔아서 운영한다. 시스템이 다른 것이다. 중국의 박물관 특성을 알아야 한다.
▲여홍기 계장충남도가 당시 의자왕 묘 찾기에 접근한 배경에는 백제를 다시 정리해 보자, 백제의 끝을 알아보자는 뜻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이것이 단초가 돼서 학술적인 교류도 시작됐다고 본다. 우리는 백제적인 시각에서 접근하지만 중국은 이런 시각이 아니다. 중국은 이를 원하지 않고 고대 정치사를 다루지 않는다. 대신 금석문을 비교연구 한다든가. 접근 방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교류를 위해 백제라는 테두리를 만들어놓고 접근하다보면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다.
▲강종원 연구위원백제문화 추진위에서 대백제전 홈페이지에 사용할 자료를 번역하기 전 검토했다. 내용 중에 백제가 중국에 진출하고 문화를 전파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중국은 전혀 다르다. 이것이 현실이다. 백제의 유물이 많지 않은 것도 중국에서 찾기 시작한 요인 중의 하나다. 하지만 중국에 백제 유물이 어디 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백제문화가 일본에 전파됐으니 백제 유물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나았듯 중국도 그럴 것이라는 전제를 갖고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점이 문제다. 교류가 있었으니까 가능한 전제지만 중국에서 백제 유물을 찾는다는 발상 자체가 현실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중국에서 백제의 원류를 찾기 위해 찾는다고 할 수는 있다. 여기서 백제를 찾아볼 수 있다는 식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박순발 교수대백제전이 추진 중이지만 정치사적으로 접근하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규정하고 접근하면 교류를 틀어막을 수 있다. 오히려 들쑤셔 놓을 수 있다. 위험한 것이다. 백제의 대륙 진출설 등을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가 제 무덤 파는 일이다. 경계해야 할 것이다.
-사회내년 대백제전을 앞두고 부여군에서 준비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여홍기 계장부여는 당초 백제문화엑스포 수준으로 민선3기 때부터 추진해 왔다. 하지만 도가 나서 시군을 통합하고 대백제전으로 키우면서 추진위에서 모두 맡아한다. 부여군에서는 보조 역할을 하는 개념이다.
▲박순발 교수역사를 가지고 한풀이를 할 수는 있다. 역사에 한풀이 DNA가 있다. 백제문화제 같은 것도 백제는 망했지만 뛰어난 문화를 남겼다는 역사 한풀이 말이다. 우리가 대백제전을 개최한다고 해서 중국이나 일본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
▲강종원 연구위원백제 자원을 잘 활용해서 개발하자는 원론적인 입장에서 논문을 썼었다. 축제라는 것 자체가 역사적 배경을 깔고 있다. 너무 학술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내용을 공식화해서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학술적인 것과 축제로 할 때 역사를 구분해야한다. 예를 들어 백제 대륙 진출설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백제가 중국을 정복하려했다거나 하는 사실은 없다. 이후의 일은 하나의 설화나 이야기로 풀어야지 마치 사실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
-사회백제 또는 중국과 관련된 전문가가 많지 않아 연구의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
▲박순발 교수전문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중국사가 없는 학교는 없다. 단 고고 미술사나 이쪽 부분에 관련해서는 전문가가 많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국내에서는 아직 위상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백제를 어떻게 종합하고 평가할 지 연구해야 한다. 중국에서는 수많은 유물이 나온다. 연구도 많다. 이 가운데 백제 관련 자료가 있는지 없는지 그들은 모른다. 우리가 구체적인 사실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요구해야한다. `백제에 어떤 게 있는데 중국 쪽 자료에 있는지 찾아달라'고 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연구가 있어야 한다. 내가 연구회를 만든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한·중·일 학자들이 백제사에 관심이 있어야 성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런 부분에 관심 확대 등이 필요하다. 백제문화제 같이 관에서 뭐한다고 뻥 터뜨리면 중국의 상급기관에서 하지 말라고 하면 아무것도 안될 수 있다.
▲정상기 실장중국과 관련한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삼국 중에 백제만 특히 부족한 것은 아니다. 또한 중국에 거주하면서 한국을 이해하는 전문가 역시 부족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강종원 연구위원중국을 연구해야한다고 하는 것은 한국을 이해하는 중국학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 학자들의 백제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관은 물론 일반인들이 아는 것도 필요하다. 중국에 백제문화가 전파됐으니 중국도 백제에 대한 인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선입견이다. 중국인의 백제 인식을 높이는 역할이 중요하다.
▲박순발 교수백제 도성이 어떻게 되는지 백제 전반적인 문물이 어떻게 되는 지 중국 학자들에게 부탁도 한다. 하지만 한글을 읽는 사람이 없다. 교류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중국 대학에 연구하는 한국학생들이 가있으면 된다. 하지만 부족하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자료를 얻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로 우리가 번역해 줘야 한다. 한·중·일 3개 국어로 교류가 안되면 수준 발전이 없다. 중국과의 교류를 위해서는 번역 작업을 시켜야한다. 난징이 2004년 이후로는 사비 왕국에 대해 전면조사를 하고 법으로 정해 백제사 유물들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뭐가 백제 것인지 모른다. 서로 리마인드 시켜주지 못하면 현장에서 없어질 것이다.
▲이용현 연구사전문가가 부족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지역 백제 연구자는 많은 편이다. 문제제기가 된다면 양적인 문제보다는 질적인 문제다.
-사회백제 문화가 폭넓게 인식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있는가.
▲이용현 연구사역사를 어떻게 연결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우선 아이템이 부족하다. 오래 지적돼 온 볼거리, 숙박, 먹거리는 한순간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나라나 아소카 벤치마킹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관광코스를 개발해야 한다. 축제를 주최하는 입장에서도 지역사회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또 하나는 아이템 면에서 연구가 부족하다. 의자왕 중심으로 한 낙화암 등은 일제시대부터 확립된 것이다. 무령왕릉이나 능산리 사지 등을 활용해 대백제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교육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 기존 자료를 수용하고 포용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미디어에서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한데 중도일보가 모범적 사례라고 본다.
▲강종원 연구위원도에서 백제문화 활성화를 위해 여러 지원책을 모색했다. 실현이 잘 안됐다. 장학금 지급이나 백제 관련 논문을 쓸 경우 지원하는 방안, 연구자 우대 방안, 시군에 전문가 채용 등 정책적으로 수립은 됐다. 하지만 여러 가지 시행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행은 안됐다. 그러나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책이 발표됐으면 실현되는가 여부를 언론 등에서 지속적으로 체크해줬으면 좋겠다.
▲박순발 교수백제문화나 백제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일찍 멸망해서 볼 것 없다는 식의 인식이다. 하지만 삼국시대 역사에서 볼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 통일 이후 유물이다. 이에 비하면 백제는 볼 것이 오히려 많은 것이다. 충청권에서는 사비도성이 좋은 예다. 아직까지 왕궁을 가진 나라는 없다. 부여는 분명히 도성이 있을 것이다. 그걸 찾아내야 한다. 물이 없으면 흙을 파서 물을 고이게 해야 한다. 관심이란 그런 것이다.
▲여홍기 계장지역 실정으로 말씀드린다면 관심이 많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문화관광해설사나 자원봉사자 많이 늘었다. 예전에는 억지로 시켜야 했는데 지금은 학교 관계자나 사업자, 일본인까지 문화재 관리사 교육에 참여한다. 참여 신청자가 굉장히 많다. 특히 최근 고도 지정이 되면서 처음 반대하시던 분들도 부여도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등 시민들 의식 많이 높아졌다. 백제역사 인식 많이 좋아졌다. <끝> /정리=이시우 기자·사진=김상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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