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배]우주인의 성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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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배]우주인의 성장통

[교육단상]송용배 예산 신양중 교사

  • 승인 2009-12-28 15:01
  • 신문게재 2009-12-23 20면
  • 송용배 예산 신양중 교사송용배 예산 신양중 교사
S#1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특히 아이들은 나날이 새롭게 진화한다. 게임, 휴대폰, MP3, 전자사전 등 각종 전자매체에 자유로운 아이들과 그런 경험이 없는 나의 유년기가 충돌을 한다.

▲ 송용배 예산 신양중 교사
▲ 송용배 예산 신양중 교사
지금 나는 열 다섯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있지만 성장기의 경험치가 너무 다른 건널 수 없는 시간의 간격 때문에 아이와 나는 자주 갈등하고 자주 상처를 나눈다.

오늘도 그랬다.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카드를 하는 아이들을 보고, 학교에서는 카드놀이를 하면 안 된다고 제재하려 하자 “선생님, 이건 돈 따먹기가 아니라 머리가 좋아지는 원카드 게임인데, 뭐 어때요?” 하면서 소 닭 보듯 내 말을 무시하고 킬킬거리며 계속 카드를 뽑아 든다.

그 당돌하고 도발적인 태도에 주저하다 제대로 말도 못하고 돌아선다. 이렇듯 아이들은 이미 나와 다른 족속이다. 옳고 그름의 가치척도, 사물에 대한 표현이나 행위도 나와 는 너무 다른 아이들. 그런데 그 다름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TV이나 게임 속에서 사는 것 같은 아이들을 그래서 나는 우주인이라 명명한다. 그리고는 그 우주인들의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날마다 절망처럼 나를 합리화해 간다. `그래 너희 나이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행동이야. 그런 과정을 통해 어른이 되고 사회화되는 거겠지. 까짓 돈 따먹기도 아닌데 뭐.'

`어쩌면 나도 너희처럼 또래와 어울려 고스톱을 배웠고, 또 몰래몰래 쌈잡기 같은 놀이를 훔치면서 이 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런 나의 유년기에 비하면 지금 저 아이들의 모습은 얼마나 당당하고 기백이 있는가?' 그렇게 되뇌이다 문득 “엄마, 학교에서 애들이 원카드 해도 우리 선생님은 뭐라고 안 하신다.” 누군가 부모님께 이 사실을 이야기 한다면 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곰살갑던 등줄기에 아찔한 전류가 흐른다. `이제 나는 어쩌지.'

S#2
말하기 수업 시간이다. 분수처럼 튀어오르는 생기발랄한 아이들의 표정이나 목소리가 싱싱하다. 이번엔 우리 반 개구쟁이 수용이 차례다. 녀석은 성큼성큼 앞으로 나오더니 노트를 펼쳐들고 줄줄 읽기 시작한다.

그런 수용이를 대하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묘한 냄새가 났다. 읽기를 마치고 이야기의 출전과 내용에 대한 몇 가지 질의와 응답을 하는 사이 노트에서 종이 한 장이 팔랑팔랑 교실 바닥에 떨어졌고, 허둥거리며 그것을 잡으려는 수용이 위로 와르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날아간다. 발표한 내용의 종이다. 그런데 노트가 아니라 책을 날카롭게 오려 공책에 끼워 넣고 발표한 것이다. 그것도 도서실에서 대출 받은 책을, 그런데 그것보다 더 가관은 별로 잘못한 것이 없다는 말투와 표정이다.

아무리 잘못을 지적해 주어도 계속 자기 주장이다. 정말 화가 나서 아이를 을러서 손을 들고 있게 하고 수업을 끝낸 후 아이의 행동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그러나 금방 말을 돌려 자신보다 더 잘못한 다른 아이의 이야기로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 한다. 진이 빠진다. 아이는 대충 항복하고 복도를 가로질러 신나게 뛰어간다.

아이들의 흔적이 지워진 텅 빈 도서실, 겨울 빛 잔잔한 창밖을 본다. 이렇게 늘 아이들 속에서 쩔쩔대는 선생이란 사람의 가슴을 본다. 아이들은 나와 다르게 날마다 진화하는 새로운 우주인이다. 자신의 주장이 분명한 저 아이들, 감추고 아닌 척 하면서 유배되었던 내 유년에 비하면 얼마나 당당하냐? `수용아, 솔직한 네 감정 표현은 나의 위선보다 용감하고 순수하다. 하지만 이제 너희들이 살아갈 세상, 따뜻하게 공존할 우주인의 법칙도 만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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