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상하려는 봉황의 꿈, 백제금동대향로
2. 룽먼석굴(龍門石窟)에 남겨진 백제인의 흔적
3. 서산마애삼존불과 백제인의 미소
4. 부여 정림사와 뤄양 영녕사 소조상
5. 사비도성과 난징(南京)의 건강성
6. 무령왕릉속의 독창적 문화인
7. 백제 유민들의 흔적
8. 백제문화 탐구의 새로운 모색
9. 사진으로 보는 중국속의 백제문화
10. 시리즈를 마치며
9. 사진으로 보는 중국속의 백제문화
허난성(河南省)박물원이 소장중인 ‘오봉훈로’ 서한시대(BC 206~AD 25년) 동(銅)으로 제작된 것으로 다섯 마리의 봉황을 형상화했다. 지난 1996년 중국 정주대학교 원위청(溫玉成) 교수가 ‘백제의 금동대향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란 글에서 밝힌 “향로 꼭대기 부분에 있는 새는 ‘봉황’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는 주장이 잘못됐음을 입증해주는 자료가 바로 오봉훈로이다. 백제금동대향로의 봉황 머리깃과 오봉훈로의 머리깃이 닮아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같은 닭 벼슬 형태 머리깃의 새를 중국에서도 봉황으로 해석하고 있다.
2. 동훈로(銅燻爐)
상하이(上海)박물관의 ‘동훈로’는 백제금동대향로와 가장 흡사함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한대(漢代)에 제작된 이 ‘동훈로’는 높이 20cm, 뚜껑 지름 10cm 규모로 백제금동대향로와는 규모면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정상부분의 봉황과 받침대인 기대부분 용의 형상은 두 향로가 같은 모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3. 부여씨 불상
뤄양(洛陽) 룽먼석굴(龍門石窟)의 부여씨(扶餘氏) 불상 2구. 불상 밑에는 조성비문이 두 줄로, 위에서 아래로, 우측에서 좌측으로 모두 12글자가 새겨져있다. 일문랑장(一文郞將) 처(妻) 부여씨(扶餘氏) 경조양구(敬造兩區). 즉, ‘랑장군의 처 부여씨가 부처님을 (진심으로) 믿어 불상 2구를 조성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877호 굴감 바로 왼쪽 벽면에 조성된 좌불(坐佛) 2구는 높이가 불과 10cm 안팎이라 잘 살펴봐야 그나마 볼 수 있을 정도다. 부여씨의 좌우측에는 당시 룽먼석굴과 관련된 도로를 개설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곽씨(郭氏)와 방씨(方氏)를 기념하기 위해 곽공로(郭公路) 와 방공로(方公路) 라는 글씨를 새겨놓았다. 때문에 일반인들이 부여씨의 불상을 찾아보려면 바로 부여씨 우측의 곽공로와 좌측의 방공로를 잘 살펴야한다.
5. 벽돌무덤
난징(南京)시 인근에서 출토돼 난징박물관에 보관중인 벽돌무덤은 아직 누구의 무덤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중국 학계는 이 무덤이 무령왕릉과 엇비슷한 시기 또는 다소 늦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덤의 윗부분은 아치형을 띠나 전체적인 모습은 복원하지 못한 실정이다. 왕릉 내부의 뒤쪽 벽에는 탑이 조성돼 있다.
6. 벽돌무덤의 벽돌 문양
벽돌무덤에서 출토된 벽돌의 문양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문양과 거의 흡사함을 알 수 있다. 벽돌 모서리 면에 연꽃 2개를 표현했거나 벽돌 2장을 포개놓으면 크고 소담한 연꽃이 되는 연꽃문양의 벽돌 등이다. 그러나 난징박물관의 벽돌무덤 문양은 28가지의 다양한 벽돌을 사용한 무령왕릉의 벽돌 무덤 문양보다 단순함을 드러내고 있다.
7. 진묘수
뤄양박물관에 전시중인 진묘수(鎭墓獸)는 공통적으로 4개의 발이 달렸지만 눈이 튀어나온 진묘수, 사람 얼굴 형태의 진묘수 등 제작각이다. 무령왕릉의 널길 한 가운데에서 발견된 진묘수는 삼국시대 고분 가운데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중국의 흉측스런 형태와는 달리 친근감이 드는 모습을 갖췄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마치 집에서 키우는 돼지 등 가축의 형태다. 중국의 진묘수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창적이며 백제 고유의 미의식과 자연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8. 소조상
뤄양박물관에 전시중인 영녕사 소조상(塑造像). 영녕사는 516년 북위 효명제(孝明帝)의 생모 영태후(靈太后)가 창건한 절이다. 지난 1979년 영녕사탑지에서 출토된 소조상편은 총 1560여점에 달한다. 국내 역사학계는 백제 사비시기의 대표적인 사찰인 부여 정림사지와 이곳에서 발굴된 소조상을 영녕사 소조상과 연관성 띤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979년부터 1980년까지 시행된 정림사지 발굴작업에서는 100여편 이상의 소조불상이 출토됐다.
9. 오수전
상하이 박물관에 전시중인 서위시대(534~556)의 오수전(五銖錢). 오수전은 북조의 서위시대는 물론 남조의 양나라 등 중국의 여러 왕조에서 만들어 사용했던 동전이며 이는 문화적 혼재를 짐작하게 한다. 무령왕릉에서도 오수전이 출토돼 중국과의 문화교류를 말해주고 있다.
10. 호자
뤄양박물관에 전시중인 북조시대(439~589)의 용변기인 호자. 이와 유사한 사비시대의 호자가 부여 관북리에서도 발굴된 바 있다. 이는 사비시기에 남조는 물론 북조 문화를 받아들이는 등 폭넓은 외교 채널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다.
11. 북망산 풍경
뤄양의 북망산은 의자왕 무덤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학계에서는 의자왕의 묘가 바로 지금의 봉황대 일대에 존재할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1300여년이 흐른 현재 의자왕의 묘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며 하나의 해결 과제로 남아있을 뿐이다. /뤄양, 난징= 글 박기성ㆍ사진 김상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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